최근 2014년 광주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결정되었다. 최종적으로 감독을 맡게 된 이는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제시카 모건’이다. 최근 문화계에서 외국인 전문가를 초청하여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일은 드문 경우가 아니다.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이 빠른 대중문화계에서는 더욱 일상적인 일이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보아 등의 젊은 가수들 뿐 아니라 전설의 가왕 ‘조용필’도 외국 작곡자들에게 곡을 맡겼다고 하니 최근 문화계의 국제화 동향은 뚜렷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아야만 할까. 분명히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있어 국적을 따지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문화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콘텐츠의 질과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화 콘텐츠’라는 것은 다른 분야와 다르게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독자적인 문화 정체성’을 그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란 통계적인 수치로 계산되는 양적인 것이 아니고, 한 사회의 의식주, 언어, 역사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발달이 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과 차별화되는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문화계는 여전히 우리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취업에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국문학, 지리학, 역사학 등의 국학을 비롯하여 인문학, 예술 분야 등은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에서조차 설 자리가 없다. 또한 당장에 소비가 가능한 대중문화 상품 이외의 문화 콘텐츠 개발에 있어서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 문화와 유산에 대한 연구, 교육도 미진한 상태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 끝이 난 숭례문 복원사업의 경우, 단순히 건물의 외형을 복구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숭례문의 고고학적,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본질적인 것은 외형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숭례문으로 상징되는 우리 문화재와 전통의 가치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소홀한 데 비해, ‘국제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외국 문화를 수입하고 또 이를 모방하려는 노력은 지나칠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춘다는 미명 하에 비슷비슷한 콘텐츠들을 만들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한국산’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물론 재빠르게 국제적 트렌드를 포착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수출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작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싸이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싸이라는 인물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그 현상 자체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 현상 너머에 있는 ‘구조’를 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광주비엔날레가 영국인 큐레이터를 총감독으로 선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곰곰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광주비엔날레는 국가적 성격의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가장 전위적이고 민중적인 역사를 지닌 광주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행사를, 옥스퍼드 대 출신의 영국 큐레이터가 진두지휘한다는 사실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문화시장의 수입국으로, 문화계의 제3세계로 남아있어야만 할까. 이제는 단발적인 한류 유행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탄탄한 문화 기반을 만들고 장기적인 ‘문화 창조국’으로 거듭나야 할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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