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and Transphobia)이다. 이날은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을 기념해 캐나다의 성소수자 단체가 2003년에 만들었다. 이를 기념해 이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 캠페인을 벌여왔다. 국내에서도 2008년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성소수자 인권운동 연대체)이 이날을 기념 삼아 발족식을 가졌다. IDAHO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하며, 성소수자 스스로도 성소수자 혐오 세력에 굴하지 않고 자긍심을 가지고 살 것을 다시 한 번 다지는 날이다.

  처음 IDAHO를 접하고 무슨 날인지 의미를 알았을 때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라는 것에 의아해했다. 왜 국제 성소수자 축제나 기념일이 아니고 ‘혐오 반대’의 날이라 했을까. 아마 혐오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성소수자 혐오에 대하여 안일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레즈비언임을 자각한 것은 대학교 2학년 초 무렵이었다. 퀴어(성소수자)에 호감 혹은 악감뿐만 아니라 관심이 없었을 때, 커밍아웃 혹은 성정체성 혼란 등의 일은 성소수자들에게 몹시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추측했다. 가끔씩 들은 하리수, 홍석천에 대한 평가가 내가 알고 있는 퀴어를 보는 시선에 관한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시선 때문에 힘들어 했다. 또한 공인뿐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에게도 주변의 시선과 그로 인한 사건들은 힘든 일이었으리라 추측했다.

  추측과 달리 나의 성정체성 혼란과 커밍아웃은 별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과거보다 나아진 사회 시선과, 우리 학교 특유의 분위기 덕이라 생각한다. ‘변태소녀하늘을날다(변날)’라는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가 있는 곳 혹은 심심찮게 레즈비언 커플들이 보이는 곳이기 때문인지 레즈비언인 '나'를 보는 시선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어떤 세계일까 궁금했지만 신기하게 보지 않았고 나의 수다를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마치 고향이나 관심 있는 학문 분야를 이야기 하듯 어려움 없이 커밍아웃을 했다. 당시는 정치성향을 얘기하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범위는 점점 넓어져 좋아하는 교수님에게도, 아직 친하지는 않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없었다. 나를 ‘나’로 보기보다 ‘레즈비언인 사람’으로 보일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무언의 폭력이, 서로가 맺는 관계의 저변에 존재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순간에, 혐오의 대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로 살뜰히 이루어놓은 울타리 너머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고요한 폭력이 떠들썩하게 퍼지며 커밍아웃의 울림을 잠재워버린다.

  하루 빨리 성소수자를 보는 불온(不溫)한 시선을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아하는 취미처럼 성적 취향을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대한 염려 없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비단 성소수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