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수)은 제32회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진작과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지정한 기념일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본지는 올해 8월 퇴임을 앞두고 본교 교수로서 마지막 스승의 날을 보내는 박성은 교수(미술사학과), 오욱환 교수(교육학과), 이광자 교수(간호학과), 이영애 교수(심리학과), 조연순 교수(초등교육과)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박성은 교수는 1995년부터 본교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쳤다.

-교직 생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는지
  대학원 미술사학과 학생들이 기억에 남네요. 90년대 말에는 수업 조교가 강의실에 프로젝터를 들고 다니며 수업 때 설치했어요. 무거운 프로젝터를 들고 다니던 조교의 모습이 늘 안쓰러웠죠.

-그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6년 전 젊은 교수들은 이미 PPT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혼자 슬라이드를 썼죠. 저는 지독한 기계치였는데 제자들에게 간신히 PPT 만드는 법을 배워 ‘서양 미술의 이해’를 처음 PPT로 강의했던 날 정말 아찔했어요. 마치 선사시대에서 탈출한 느낌이었죠.

-본교 교수로서 가장 뿌듯했던 일이 있다면
  매학기 학부 교양과목인 ‘서양 미술의 이해’를 가르치면서 후배에게 서양 문화와 미술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해 준 일이 정말 보람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는지
  매년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합창으로 부르는 스승의 은혜를 듣게 되죠. 그땐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제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요. 올해 마지막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이제 다시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저의 ‘서양 미술의 이해’ 시간을 기다려 주는 제자들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1886년 우리 역사의 혼란기에 서양 여성 선교사 한 분에 의해 대한민국 여성의 교육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세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라의 여성을 위해 도움을 주는 이화인이 되길 바랍니다.


오욱환 교수는 1984년부터 본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쳤다.

-지금까지의 교직 생활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학생보다 기억을 되새겨 주는 졸업생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졸업생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말하면서 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이들은 제가 가르침에 상당히 열정적이었다고 기억해요. 교육에서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였습니다.

-본교 교수로서 가장 뿌듯했던 일이 있다면
  내가 다른 대학의 교수로 부임했다면 어떻게 생활했을지 알 수 없지만, 본교에서는 지적 탐구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속적으로 고수할 수 있었고 본교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는지
  초임 교수였던 나는 졸업식 날, 방학인데도 양복을 차려입고 연구실에 왔습니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올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졸업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후 나는 졸업식에 안 나왔습니다. 물론 스승의 날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죠. 돌아오는 마지막 스승의 날도 아무런 소회가 없습니다. 어버이날이 자식의 행위로 의미가 있듯, 스승의 날에 스승이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우리가 되새겨야 할 좋은 말들은 성인들이 이미 모두 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 말들을 조금 다르게 표현할 뿐입니다. 일상의 중요성과 존재감에 대한 플라톤의 명쾌한 금언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번역으로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없어 부득이 영어로 전합니다. “We are what we repeatedly do. Excellence, then, is not an act, but a habit.”


이광자 교수는 1976년부터 본교에서 간호학을 가르쳤다.

-교직 생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는지
  항상 강의실 맨 뒷자리에 검은색 옷을 입고 앉아있던 한 학생이에요.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리고, 지각과 결석도 잦았는데 말수도 없었죠. 자칫하면 그 학생은 정신분열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간호학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잘 극복했어요. 간호학 전공자로서 자신과 같은 상처가 있는 타인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그 학생은 지금 한 국립대학에서 정신 간호학을 가르치는 교수예요.

-지난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는지
  대학의 스승과 제자 관계가 중·고등학교보다 더 소원한 것이 일반적인 듯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진심 어린 표현이 중요합니다. 학문적인 만남이나 개인적인 상담을 통해 관계가 형성됐던 학생이나 졸업생이 스승의 날에 메일로 소식을 전해오면 반갑습니다.

-8월 퇴임 이후 계획은
  현재 생명의 전화 부설 자살예방센터장을 하고 있는데 퇴임 후 그일에 보다 집중할 것입니다. 제 전공이 정신간호학이고 생명의 전화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기에 앞으로 생명의 전화 관련일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에게 ‘이화여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화여대는 잠긴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개교 초기의 본교는 조선의 힘없는 여성을 위한 교육터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여성 안에 숨어있는 잠재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깨워주는 역할을 하죠. 또 본교생이 전 세계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에요.


이영애 교수는 1982년부터 본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쳤다.

-그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수업을 하면서는 학생을 잘 모르고 지내는데, 학과 엠티에 가보면 본교생이 연예인 부럽지 않게 ‘팔방미인’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다양한 재능과 한밤중에 대화하면서 학생의 순수한 모습 보게 돼 놀랍니다.

-지난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는지
  스승의 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기 때문에 홀로 앞에 서 있기가 다소 민망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이 노래에 맞는 훌륭한 스승인지’를 자문하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이제 본교에서 마지막 스승의 날을 맞으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훌륭한 학생이 있었기에 교수생활이 의미가 있었고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8월 퇴임 이후 계획은
  지금까지 심리학 원서를 여러 권 번역했습니다. 그 중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들이 최근 많이 읽히게 되는 것을 발견한 후 좋은 책은 언제고 독자를 얻게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됐어요. 고급 심리학 지식을 알리기 위해 계속 번역을 할 생각이고, 퇴임 이후 번역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강연이나 책을 보며 성공에 대해 착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전에 실력으로 경쟁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체이스(William Chase)의 좌우명을 남기고 싶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결실도 없다.(No pain, no gain).”,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실력이 있는 사람이 버틴다.(When the going gets tough, the tough get going)”


조연순 교수는 1984년부터 본교에서 초등교육을 가르쳤다.

-그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본교 부속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기간 학부과목 강의를 하지 않다가 8년 만에 강의에 들어갔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에게 많은 책을 읽게 하고 초등교육의 개념을 스스로 찾게 하는 과제를 주었더니, 이후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 수가 반으로 줄어서 나중에는 학생들이 다 없어졌을 때 정말 황당했죠.

-본교 교수로서 가장 뿌듯했던 일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뿌듯한 순간이 몇 있어요. 우선, 초등교육과가 교육학과 속 하나의 전공으로 있다가 1990년에 학과로 독립했을 때 제가 첫 학과장으로서 학과의 정체성을 위해 물리적·사회적 여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죠. 또 2009년부터 2년간 사범대 학장으로 있을 때 ‘전국 사범대학 평가’로 정말 힘들었는데 본교 사범대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교수 초기에 '한국 초등교육의 역사연구'를 진행하느라 대학원 학생들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 경남 청학동 서당까지 찾아다녔던 일도 보람 있었죠. 뿐만 아니라 염리동 저소득층 지역의 여성지원을 위해 학부학생과 함께 봉사했던 일도 기억나네요.

-지난 교직생활 동안 수많은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는지
  스승이란 누구에게나 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스승이 점점 직업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주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라며, 학과목 성적과 취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학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인생의 여러 가능성과 길을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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