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87, 이화동산에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우다
서울 1987, 이화동산에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우다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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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학생회장 출신 서영교 의원 인터뷰


  6․29 민주화 선언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대학가 학생 운동의 바람은 최고조에 달했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만큼 정권의 탄압도 심했던 시절 본교 학생 운동을 주도했던 선배가 있다. 1986년 본교 18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민주통합당 서영교 의원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서 의원은 입학 당시가 ‘서슬 시퍼런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가 본교에 입학했던 1983년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미팅도 하고 고고장도 다니며 신입생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눈을 감았죠.”

  서 의원이 본교 총학생회장으로 학생 운동을 이끈 건 ‘사복경찰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던 선배의 머리채를 끌고 내려오는 장면’을 목격한 뒤 시작됐다.
  “주변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잡혀가는 선배를 구하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죠. 그 순간 나를 가두고 있던 껍데기가 한순간 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 의원은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이화인이 사회 변혁 운동에 함께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며 맺은 특별한 인연으로 김수영(국문․89년졸) 동문과 민주통합당 김유임(정외․89년졸) 의원을 꼽았다. 2011년 10월 양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김수영 동문은 1986년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자마자 구속돼 서 의원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전 고양시장 후보였던 김유임 의원도 서 의원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가 치안본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학생운동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모두 대범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고자 올곧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고 지금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데 든든함을 느끼죠.”

  비록 대학 시절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는 사회 운동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거나 고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 당시 기자는 전두환 정부의 앵무새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우리 모두 불의를 보면 참지 말자’란 내용의 졸업식 송사를 했어요. 지금은 그 송사대로 불의를 참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서민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서 의원은 이화의 후배에게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자신은 과거로 돌아가도 여전히 같은 길을 선택했을 거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여러분도 여전히 현재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한번쯤은 사소하지만 불의를 목격한 적이 있을 거예요. 부패와 권력 남용에 ‘이정도는 괜찮아’는 없습니다. 댓글 하나를 달고 집에서 혼자 촛불을 들더라도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것부터 민주주의는 보다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