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사재기’ 파문이 연일 뜨거운 감자다. 사전 의미상 매점매석은 시장 독점으로 폭리를 취할 목적으로 물건을 대량 매입 및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 문화예술시장에서 사재기는 인기순위 상위권 진입을 목적으로 한 판매량 조작을 위한 제작사의 저작물 대량 매입을 일컫는 용어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출판업계의 관행이라는 베스트셀러 사재기를 비롯해 음반시장에서 음반 및 음원 차트의 순위권 진입을 위한 사재기 의혹도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처럼 상품 거래가 통합전산망으로 완전히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매번 정황 증거에 따른 의혹 이상의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 제작사가 시간을 두고 다른 방법으로 환불하거나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7일 방영한 SBS ‘현장21’은 업계에 만연한 병폐였기 때문에 정황 증거를 토대로 내부고발을 확보할 수 있었던 사례다, 국내 문화예술시장이 속병 들어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게 됐다.
대중을 무식하고 천박한 취향이라고 폄하하던 20세기 초반의 문화엘리트주의를 경계해 현대 대중문화연구는 책임을 대중에게 지우지 않는다. 현대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자는 문화의 질적 저하를 방지하면서도 대중의 입맛을 만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사례에서도 대중이 밴드웨건 효과에 쉽게 휩쓸린다고 한들 근본적인 도덕적 결함은 출판사에서 발생한 것은 자명하다.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좋은 책은 아니지만 좋은 책은 대체로 잘 팔린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판매고가 소비 기준이 되는 것도 부당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콘텐츠 생산자의 도덕적 해이가 정상적인 소비 시장이 파괴된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변명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수치로 드러나는 시장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일시적인 자본 유입은 일부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하게 될 뿐이다. 문화와 예술이 제값을 인정받는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생산과 소비가 양질의 토양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시장에서 사재기를 통해 수익을 늘리는 편법이 손쉬운 것은 문화 산업이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면 그만큼 투자에 비해 무한정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 속성처럼 보이지만, 가치 평가 기준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거대 자본이 개입하기 쉬운 구조이기도 했다. 이미 침체된 도서시장에서는 하루 거래량이 적어 하루 수백 권만 사들여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진정한 문화 향유는 거래와 소비 행위 이후의 지점에 있다. 시장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없이 포탈 첫 화면에 올라오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피상적인 소비다. 도서 시장을 예로 들자면 베스트셀러 중심의 간헐적인 소비가 아닌,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꾸준한 소비를 바탕으로 1차 토론집단을 질적 평가 단위로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소비자가 안정적인 토양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생활이 과시와 소비의 상징이 아닌 일상 안에 편입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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