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밤 12시/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후략)’

  시인 김남주는 ‘학살II’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노래했다. 33년이 지났다.

  5·18은 단연 우리나라 민주화의 발전을 이끈 상징적인 날이다. 현재 역사책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되기까지 5·18은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과거 신군부와 언론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불린 것이다. 지금은 당당히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여전히 5·18은 대중과 멀기만 하다. 특히 대학생은 학생운동과 멀어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단지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5·18 기념 서울 청소년 대회’에서 서울지방보훈청(서울보훈청)이 수상작 두 작품을 “5·18 정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교체를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민을 죽이는 군인의 모습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서울보훈청의 주장이었다. 이에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는 강력하게 항의했고, 서울보훈청장의 사과가 있었다. 작년에도 서울보훈청은 ‘29만 원 할아버지’라는 수상작을 문제 삼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본지는 1451호에서 다가오는 5·18을 맞아 민주화운동을 이끈 선배 이야기를 듣는 특집 기사를 보도했다. 이들은 군부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으로 대학 시절을 보냈으며 현재는 그 기억을 가지고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지가 만난 선배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아온 많은 대학생이 현재 우리나라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청춘을 보냈다.

  민주화운동은 단지 80년대를 살아온 누군가의 추억이 아니다. 이는 켜켜이 쌓여 새로운 민주주의를 피워내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누군가는 이를 곱씹어 기억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지난해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개봉했다. 올해 5·18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짬뽕’, ‘푸르른 날에’ 등도 상연돼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명대사를 남긴 ‘박하사탕’은 지금도 여운을 남기며 명작으로 남았다.

  33년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80년대 광주를 잊지 않는 시민이 5·18 기념공원을 찾아 참배한다. 80년대 20대는 당시 보이지 않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민주주의 사회가 된 지금. 우리는 그날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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