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이후로 어버이날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셋이 쇼핑을 나갔을 때, 걸음걸이가 느린 외할머니를 뒤로 하고 빨리 걷는 엄마에게 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엄마! 좀 천천히 가! 할머니 힘드셔!” 그러자 엄마는 잠깐 놀라신 표정을 지으시고는 이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한텐 할머니로 보이겠지만, 엄마 눈에는 항상 ‘엄마’로 보이거든? 그렇지 엄마?” 엄마는 누구에게나 ‘만능인’인 존재다. 나에게도 엄마는 내 문제에 대한 해결 열쇠를 지니고 있는 파수꾼이다. 오늘 아침도 과일 한 쪽 더 먹고 가라는 엄마에게 늦었다며 신경질을 내고, 내 블라우스 어디 있냐며 따져 묻고, 얼굴도 보지 않고 ‘다녀올게’ 문을 닫으며 집을 나섰더랬다. 엄마는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너도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라며 엄마가 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저주 아닌 저주를 했다.

  그 와중에 읽게 된 "엄마와 딸"은 일흔 살의 신달자 선생님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엄마가 그리운 일흔 살이 되어버린 딸의 이야기다.

  “엄마! 저를 떠난지 35년이 되어 가요. 그러니까 제가 엄마 없이 35년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말도 안 돼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니요. 이제는 알겠네요. 제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 왜 그렇게 위로받지 못했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가슴이 터지게 아렸는지요. 그 이유는 단 하나, 엄마가 안 계셨기 때문이에요. (중략) 엄마,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놀라지 마세요, 엄마. 제가 일흔이 되었어요. 어머나, 저도 놀라겠네요. 제가 일흔이니 엄마가 돌아가실 때보다도 나이가 많아요. (중략) 엄마, 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순하게 살다 갈게요. 엄마에게 ”그래, 잘 살았다.“라는 말 들으며 눈감을게요. 행복하게, 유쾌하게 인생의 마무리를 지으며 잘 살게요.”-신달자, 엄마와 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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