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은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발췌문이다. 저 글귀가 어찌나 아찔하게 다가오던지. 필자는 책을 읽으며 최근 가까운 지인에게 크게 마음 상했던 일이 생각났다.  알고 지낸 그 시간 동안 충분한 ‘밑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난 ‘한 번도 리허설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친한 사이라 생각해서,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일까. 섭섭한 마음에 역시 잘해줘 봤자 결국 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허무해졌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토록 가벼운 존재였던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와 다른 배경에서 다른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좁혀지지 않는 다름의 간격은 이해하지 못한 언짢음과 이해받지 못한 섭섭함으로 채워진다. 필자의 부모님은 무언가를 남에게 줄 때 돌아올 것을 너무 바라지 말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최근 그 일을 통해 저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백만큼 배려해주고 생각해주고 이해해주면 너도 최소한 오십 정도는 해주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나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배려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정말 상대방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끊임없이 주는 마음의 무게를 재다보니 왜 친한 사람에게 이렇게 계산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건지 회의감마저 들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채플에서 들은 연설자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간관계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재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이다. 내 감정을 계산하고 남한테 주는 것은 더더욱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언제나 그 무게가 같을 수 없다. ‘밑그림’ 없이 우리의 인생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성본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이드라인 없이 ‘리허설 하지 않은 무대’가 쉬울 리 없지 않는가. 그래서 서로 더 배려가 필요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자꾸 준 마음의 무게를 재려하지 말자. 어차피 준 마음이라 다시 뺏어올 수도 없는 일이다. 그 무게를 잴 시간에 더 노력하자. 그리고 함께 한 시간을 믿어보자. 그 시간이 가볍지 않음을 내가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필자는 그래서 오늘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려한다. 그 날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주말에 영화나 보러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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