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본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지난주 동행 채플에는 발달장애 관현악단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하트금관앙상블, 하트클라리넷앙상블, 장애인 실내 관현악단 ‘온누리 사랑챔버’, 다운증후군 장애학생과 함께한 중앙기독초 뮤지컬팀 ‘키즈코렐’이 무대에 올라 준비한 공연을 선보였다. 청중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라 말한다. 약자란 힘이나 세력이 약한 사람을 일컫는다. 사회에서 장애인을 약자로 정의하는 데는 이러한 약자의 의미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힘이 약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사회적 약자의 경우처럼 대상이 무엇으로 인식되고, 어떠한 의미로 여겨지는 데는 개인의 준거 틀(frame of reference)이 전제돼 있다. 준거 틀이란 양육, 교육, 직장생활 등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개인 고유의 경험과 인식체계를 말한다. 준거 틀에 기인한 개인의 인식이 모여 사회적인 의미망, 구조 등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이란 의미가 개인적 맥락인 준거 틀에 기반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은 사회라는 동일 집단 내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각 개인의 경험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 자신을 둘러싼 개념, 문제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준거 틀에 따라 선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가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그(역사가)는 다만 그 행렬의 어느 한 부분에 끼어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또 하나의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행렬’에 따라 ‘그’는 오른쪽으로, 어느 때는 왼쪽으로 틀어지거나 굽이치며 상대적으로 위치가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정의해 보호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장애인에 대한 준거 틀이 과연 합리적인지 제고해야 한다. 장애, 사회적 약자라는 개인적 인식의 합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회 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동행 채플에서 류홍주 목사도 이화인에게 장애를 이해하는 태도로 자신의 선입견을 버릴 것을 당부했다. 기존의 ‘행렬’에 도태되지 않는, 깨어 있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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