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건축과 관련된 영화 및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건축에 대한 사회적,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한해였다. 더불어 본교에서도 제12회 김옥길 기념강좌를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던 ‘왕슈’와 ‘니시자와’, 그리고 한국의 유명 건축가들 중 한분인 ‘승효상’씨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고, 기념 조형구조물 설치와 뒤이은 포럼 행사를 통해 국내외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본 주제에 대한 본교 건축학전공 교수진과 다양한 건축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현재 책 출판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건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증가와 함께, 나 또한 학생들과 비전공자들에게 ‘건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이는 내가 학부시절 건축에 입문 시 내 은사님으로부터 처음 받았던 질문으로, 당시 몇 권 안 되는 책에서 본 어려운 말로 그에 대답하려 했었다. 그 후 학창시절 건축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머릿속에는 건축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고, 졸업하고 실무 및 대학원 과정에 있으면서도 항상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고, 답이 찾아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흥미로운 디자인 작업과 이론 공부에 빠져 건축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갖다가, 각박한 현실에 부딪히며 때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면 할수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앞서 언급한 ‘프리츠커상’의 몇 해전 수상자인 Peter Zumthor라는 건축가의 Thinking Architecture 라는 서적에서 그의 건축 교육에 대한 소견을 접할 수 있었다. 건축은 한 개인이 살면서 겪는 전기적 경험(Biographical Experience)를 통해 학습된다는 이야기였다. 항상 어딘가 있을 정답을 찾던 나에게 이 글은 사고의 틀을 깨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건축에 대한 정의는 없었다. 건축을 해가는 개개인이 서로 다른 환경을 거치면서 서로 다르게 성장해가고, 그것이 건축을 통해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항상 끊임없이 건축이 무엇일까 고민해왔던 과정 자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생각하는 건축이 되어왔고, 그동안 경험해왔던 시련과 성과가 내가 만드는 건축이 되어왔던 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 활동을 해가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정의하는 건축이 아닐까 싶다.

   이는 건축만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공부나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다른 사람들이, 혹은 사회가 주는 정답만을 쫒다보면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미궁에 빠지기도 한다. 그보다는 지금 현재 자기의 학문과 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자기가 겪는 경험의 상대적 가치에 집중하고 도전할 때, 그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더 큰 꿈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대학 교육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보다 깊이 있는 고민에 빠져 다양한 교내외 경험을 통해 성숙한 자아를 성정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시기는 향후 지식인으로서 살면서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기본자세를 만들기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보다 다양성과 깊이가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Biographical Experience의 가치에 근본을 둔, 보다 개개인의 portfolio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교육과 학습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학점과 스펙, 영어점수와 취업 등 보편적 가치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울 때가 많다.

  건축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막연함에서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개념을 만들고, 더 나아가 그것이 물질화되어 현실세계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건축’이다. 이는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우리 개개인의 삶도 ‘무’에서 ‘유’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것이고, 현실세계에 나가기 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의 소중한 개념을 완성해가는 것이 학창시절이다. 나는 우리 이화의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삶의 건축’을 보다 소중히 하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순간순간으로부터 열정과 즐거움을 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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