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상처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요”
“한국전쟁의 상처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요”
  • 유은혜 기자
  • 승인 2013.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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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소설 「The Way Out」과 한국어 소설 「숨겨진 탈출구」를 동시 출판한 김성혜 작가 인터뷰
▲ 한국전쟁 시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영어 소설 「The Way Out」과 한국어 소설 「숨겨진 탈출구」를 들고 웃고 있는 김성혜 작가 최형욱 기자 oogui@ewhain.net

  “언젠가 한 번은 저를 고향에서 쫓아낸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북한에 태어나 자유가 뭔지, 인권이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죠.”

  5일 북한은 ‘오늘 내일이라도 전쟁을 할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을 위협했다. 최근 북한은 핵을 무기로 앞세워 국제사회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한국전쟁 시기 남한과 북한의 이야기를 다룬 영어 소설인 「The Way Out」과 한국어 소설 「숨겨진 탈출구」를 동시에 쓴 이화인이 있다. 「The Way Out」출판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김성혜(영문·66년졸) 작가를 2일 ECC에서 만났다.

  김성혜 작가는 ‘책임감’을 느껴 소설 「The Way Out」을 쓰게 됐다. 그의 고향은 김일성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고 소설을 쓰기로 다짐했다. “제 고향은 평양 만경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송산리’라는 작은 동네였어요. 굽이져 흐르는 대동강과 시원하게 넓어지는 강줄기,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지금 제 고향 마을은 허허벌판이에요. 김일성이 그곳을 자신의 탄생지이자 성지로 만들면서 마을을 없앴기 때문이죠.”

  김일성 등장과 한국전쟁 이후 김성혜 작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 작가는 1·4후퇴 직전인 7살 무렵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와 피난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후 시작된 피난생활은 어린 그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전쟁 중 끼니를 챙기지 못해 어머니가 병을 얻었고 당시 8살이던 김성혜 작가는 엄마 역할을 했다.  “10살 무렵 한겨울 1월7일은 아직도 또렷이 생각나요. 한겨울에 부모님이 기다리시니 어린 제가 손으로 얼음을 깨면서 빨래를 했어요. 결국 동상에 걸렸고 그날 손이 너무 아파 밤에 울며 잠에 들었어요.”

  전쟁의 무게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김 작가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준 건 ‘미군의 어부바’였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미군이 저를 업어줬던 것이 그렇게 따뜻했어요. 미군의 등에서 어린 제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것이죠. 그 이후 열심히 영어를 공부해서 미국에 건너가 그 군인을 찾겠다는 생각을 했죠.”

  11살 이후 김성혜 작가는 서울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본교를 졸업했다. 이후 전공인 영문학을 선택한 것도, 미국 유학을 한 것도 어린 시절 작가에게 사랑을 전해준 군인을 찾고 싶은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그 군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모두 우연의 연속이었어요. 인생은 이렇듯 작은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된다고 생각해요.”

  「The Way Out」의 주인공 진, 선, 미는 본교 교훈인 진(眞), 선(善), 미(美)와 같다. 김 작가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과 본교 교훈의 일치도 ‘우연과 필연’이라고 설명했다. 살기 위해 자신의 발로 고아원에 들어가고, 소매치기까지 하는 주인공 ‘미’의 어린 시절은 김 작가의 피난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수렁에 빠졌던 인물 ‘미’의 탈출구는 공부였어요. 그래서 ‘미’가 연세대 의대에 진학하게 되는 거죠. 제 어린 시절 탈출구는 ‘미군의 사랑’에서 시작된 공부였죠. ‘미’ 역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비행 청소년으로 살아갔을텐데 공부라는 탈출구를 발견한 거예요.”

  김성혜 작가는 소설 「The Way Out」에 집필과정 5년과 평생의 고민을 담았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역시 염두에 뒀지만 소설을 쓰며 지나온 70년 인생을 돌이켜 보고 반추했죠. 그 때 인간의 삶도 하나의 창작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노래를 부르든 그림을 그리든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산다면 모두가 ‘창작 과정’ 중에 있는 거죠. 저는 창작의 표현 방식으로 소설을 택한 거고요.”

  2개 언어로 책을 낸 김 작가에게 미국과 한국은 ‘다름’ 그 자체다. 각 나라 독자들이 전하는 피드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출판한 「The Way Out」을 읽은 독자들은 ‘한국전쟁 상황이 이토록 심각했는지 몰랐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국전쟁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등 다양한 의견을 말하지만 한국 독자들의 반응은 아직까지 거의 없어요. 한반도 문제인데 한국독자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워요.”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김성혜 작가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제가 일생을 살고나서 느끼는 것은 ‘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제가 영어로 소설 쓰기를 배운 것도 60살이 넘어서였어요. 남들은 ‘늦지 않았냐’고 말했지만 저는 영어 소설 쓰기를 공부했고 책까지 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