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음의 이유
이유 없음의 이유
  • 유지희(철학·09)
  • 승인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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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길을 걷고 있을 때.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햇빛이 너무 쨍쨍하거나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버스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 언제 어디서나, 갑자기 이런 물음이 우리의 가슴에 박힐 때가 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이 질문에 꼬리를 물고 많은 질문들이 한순간에 밀어 닥치면서 우리 안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이런 비일상적인 경험에 우리는 당황에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러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돌연 환상과 빛을 잃은 세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이방인이 되었음을 느낀다.” 나와 세계와의 거리를 묶고 있는 끈이 끊어지는, 나와 세계 사이의 절연(絶緣). 이때 돌연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고 세계에 대한 낯설음 속에서 우리는 “이방인”이 되고 “부조리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계-부조리-나’의 관계 속에서, 부조리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부조리에 죽음으로 응답하면서 부조리를 영원히 회피한다. 이것은 부조리의 의미를 잃게 만드는 동시에 모든 것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 그렇다면 희망을 찾는 것은 어떨까? 이는 우리가 부조리에서 겪게 되는 감정들을 일시적이고 금방 증발할 것처럼 여기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자신에게 희망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 록 희망의 주사에 우리의 면역력은 커져만 가고 부조리의 감정은 그 높이와 넓이를 더해간다. 또 다시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리는 매번 겪지만 매번 낯선 경험에 당황스러워 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뮈는 이에 대해 한 가지 “썰”을 푼다. ‘시지프 신화’가 그것이다. 시지프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신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가 바위를 이고 올라가서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떨어진다. 시지프는 산 아래로 내려가 다시 바위를 들고 산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살아있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은 ‘삶’과 같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벗어날 수 없고, 겪을 수 밖에 없는 부조리이다. 시지프가 바위를 다시 계속 올리는 것은 “반항”이다. 우리는 부조리에 맞서는 “반항하는 인간”인 것이다. 부조리를 겪는 것은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내가 “왜?” 반항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없는, 다시 말해 ‘이유 없음의 이유’이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반항’하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삶에서 마주하는 부조리에 반항하고 자유를 느끼면서 더 이상 희망에 기대지 않는 것. 이와 동시에 삶에서 주어진 모든 것에 ‘열정’으로 응답함으로써 삶에 의미를 채워가는 것. 그것이 언제나 우리를 삶에서 ‘이방인’으로 만든다.

  자기 계발서가 연일 베스트셀러가 되고 ‘드림워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강연이 즐비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성공담이, 어떤 사람이 주는 "힐링"에 때로 위로 받지만 가끔씩 헛헛함이 든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삶에 대해 “어떻게?”라는 방법과 매뉴얼이 있지만 “왜?”라는 물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카뮈는 꿈과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재에서 반항하는 나의 존재와 삶이 있을 뿐이다. 부조리 속에 시지프는 살아가고, 우리도 살아간다. 왜? 그것은 이유 없음의 이유이다. “그러니, 가끔 멜랑콜리아의 행성에 부딪혀도 괜찮다“는 속삭임이 봄바람을 타고 와 지금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