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회사 미디컴 소셜커뮤니케이션팀 대리


  아르마니 수트와 에르메스 버킨백. 보그 편집장과의 점심 미팅과 론칭 파티장 밖의 긴 줄을 제치고 들어서는 VIP의 당당함. 흔히 PR업계를 생각하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의 사만다를 떠올리는 학생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른다.
 
  PR(Public Relations)이 어떤 단어의 약자인지도 몰랐던 대학생 시절, 나도 어렴풋이 스카프 휘날리며 패션쇼의 프론트 로우(Front Row)에 자리 잡은 커리어우먼을 떠올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09년 홍보업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눈앞에 펼쳐진 그림은 달랐다. 나에게 필요한 건 긴 머리를 질끈 묶을 고무줄이었다.
 
  홍보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신문 그리고 포탈 사이트와의 싸움. 하루 동안 고객사에 대해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썼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내가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와 경쟁사, 업계 소식까지 매일 아침 검색해야 하는 키워드만 십여개. 그나마 검색에 걸리는 온라인 기사라면 다행이다. 잡지책 같은 경우는‘도비라페이지(title page)’부터 성형외과 광고가 나오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샅샅이 뒤져야 한다. 그런 잡지책만 수십 권이다.
 
  새벽같이 나와 모니터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까. 드디어 나에게도 특명이 떨어졌다. 고객사 제품을 알리기 위한 소비자 대상 미니 파티를 여는 것. 지금 생각하면 말이 파티지‘다과회’ 수준이었지만, 초보AE에게 그 긴장감이란 굉장했다. 예산부터 스케쥴링까지 모두 선배 없이 나의 몫이 되었던 것.
 
  어느덧 파티 전날 밤. 준비를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선배들은 모두 퇴근하여 불 꺼진 사무실엔 시계 소리만 째깍째깍 흐르는데. 이를 어째, 내일 사용할 파티용 스트로우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 당시 맡았던 제품의 로고색이 파란색이어서 푸른색 빨대를 찾아야 하는데, 한밤중 24시간 대형마트로 달려갔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근처 까페에서 하늘색 빨대를 꽂아놨길래 사정을 말씀드리고 파란색 빨대만 골라사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새벽은 지나가고 있고, 생전 처음 써보는 글루건으로 빨대에 플라스틱용 로고를 붙이고 있자니 어찌나 서글프던지. 급한 마음에 서두른 탓에 글루건에 손가락까지 데이고 나니 울컥하고 설움이 북받쳤다. 사무실 책상위로 뚝뚝 떨어지던 눈물. 그것이 4년 전 철없고 약했던 초보AE의 모습이었다.
 
  후배들의 기대를 와장창 깨버리는 이야기를 해서 참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사만다라 할지라도, 그녀의 20대의 모습이 나와 달랐을까 싶다. 아마 그녀도 뉴욕 거리 어디에선가 택시 안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보도자료를 쓰거나, 한 손에는 고객사 쇼핑백을, 한 손에는 기자의 다급한 요청이 들려오는 휴대폰을 쥔 채 횡단보도를 건너다녔을 것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은 상상만큼 멋지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홍보AE의 성장과정 역시 때론 ‘눈물나게’ 다이나믹하고‘화끈하게’ 스펙타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레토 힐을 벗어던지고 운동화로 갈아신을 ‘용감한’ 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PR업계로 오라(필자는 현재 홍보회사 미디컴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저와 함께 신나게 일할 후배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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