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이제야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4월에 접어들면서 몸속으로 스며드는 따사로움이 이제는 몸을 활짝 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실 창밖으로 보이는 목련 꽃망울도 잔뜩 물 먹은 듯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학생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보인다.

  최근 들어 웰빙(well-beling), 몸짱, 얼짱, 힐링 등 건강과 관련된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가 좋아지고 건강과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자신의 건강, 얼굴, 몸매 등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실천을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강사 시절의 경험이다. 당시에는 수영이 전교생 필수였다. 이대생은 수영을 못하는 학생이 없다는 것이 소문난 자랑거리 아닌 자랑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수영강의를 하던 중 대다수 학생이 장애 아닌 장애임을 깨닫고 놀라웠다. 첫 단계인 물에 뜨기를 하는데 물에 올바른 자세로 뜨는 학생이 거의 없고 아예 가라앉는 학생도 있었다. 인간은 부력이 있어서 인체구조상 자연스럽게 물에 뜨게 되어 있건만. 똑바로 뜨지 못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힘이 강하여 자세가 잘못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발차기 동작은 허벅지, 종아리와 발 모두를 이용해 두 다리를 번갈아 차야 하는데 한 발만 차서 결과적으로 몸이 앞으로 못나가고 차는 발 반대방향으로 계속 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두 팔을 앞뒤로 흔들다 귀를 통과하면서 두 팔을 교차시켜 원을 그리는 동작을 하라고 하면 열 중 아홉은 못한다. 이 동작은 유연성과 교치성을 결합시킨 동작이다. 유연성은 단순히 몸의 부드러움이 아니라 관절의 가동범위로 가장 간편하게 노화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다. 교치성은 두 가지 이상의 운동능력을 동시에 수행 가능한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학생은 자신의 두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장애 아닌가? 장애가 반드시 신체적, 정신적으로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어야 장애인이라고 하는가 말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올 2월 신입생 OT를 다녀왔다. 아침에 산책을 위해 산에 올라 내려오는 길에 한 학생이 안짱다리로 걷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학생 곁으로 다가가 같이 걸으며 걸음걸이에 대해 말해줬다. 학생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올바르게 걷는 방법과 잘못 걸으면 올 수 있는 피해를 설명해 주면서 “그동안 공부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구나, 조금씩 고치면 예쁘게 걸을 수 있어요”하니까 수줍어하면서도 밝게 웃었다. 그리고 열심히 잘 걸으려 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이대에 들어오기 위해 학생들은 얼마나 오래 열심히 공부를 했는가. 공부는 잘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왔지만 그동안 그들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에는 IQ와 EQ 말고도 MQ, 운동의 뇌가 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운동에 몰입하여 땀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하늘을 날 듯 창의력과 상상력도 풍부해진다고 한다. 운동 치료(movement therapy)도 운동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정신적 문제도 치유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병폐에 노출되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의 문제는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더욱 학생들에게 운동을 권한다. 마른 비만임에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가진 학생, 키와 상관없이 48kg이 목표라는 학생, 돈 벌어 성형수술을 해야겠다는 학생... 얼마나 젊음이라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인지! 열심히 좋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고, 별의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는 여유! 감사와 낭만! 많이 잊힌 것 중 하나다.

  간혹 말을 못하는 장애도 많이 보인다. 하루는 한 학생이 연구실에 찾아와 자신을 높이고 나를 낮추며(그 학생 나름대로는 존댓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학생 하나만이 아니다. 컴퓨터의 발달로 글씨는 초등학교 수준이요, 말은 장애 수준이다. 이 와중에 토플 만점이 무슨 소용이요, 독도가 우리 땅이 웬 말인지 모를 일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애국은커녕 무엇을 하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좋은 계절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싶은 4월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