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힐링’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티브이를 켜면, 신문을 펴면, 온라인 창만 열면 보이는 최근의 화두가 바로 ‘힐링’이다. 요새 외식업계에서는 건강한 식재료를 기본으로 하는 ‘힐링 푸드’가 유행이라고 하고, 관광업계에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휴가’가 최고 인기상품이라고 한다. 그뿐이던가, 온갖 유명 인사들이 너도 나도 몸과 마음의 ‘치유’에 대해 강연을 하고, 출판업계에서는 뒤질세라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다. 이쯤이면 우리는 말 그대로 ‘힐링’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힐링을 외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나는 왜 힐링을, 치유를 필요로 할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각기 모두 다 다를 것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제각기 다 다른 이유로 병원에 오듯, 심지어는 같은 곳이 아파도 그 이유는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예컨대 똑같은 강도로 배가 아파도 누군가는 복막염 때문에, 누군가는 단순한 과식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러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각기 달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요새의 힐링 트렌드는 어떤가? 대중매체는 천편일률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면 그만큼의 힐링 효과가 있을 거라고 선전하기에 바쁘다. 예컨대 여행을 가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콘서트에 가면, 마사지를 받으면 치유 효과가 있을 거라는 식이다. 이러한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상품의 종류일 뿐, 결과적으로 무엇인가를 소비해야만 한다는 점과 일회성적인 이벤트라는 점에서 똑같다. 이런 것은 치유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된 자본주의의 상품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에게 유효한 치료법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가 몸과 마음의 치유를 구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구조, 꿈과 희망의 상실, 소통의 부재 등등…… 각자의 이유로 아팠던 몸과 마음이 간단히 무언가를 소비함으로서 낫는 병이었다면, 애초에 그것은 병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치유될 필요조차 없었던 일시적인 스트레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는(말 그대로 ‘힐링’이 필요한 과정에서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 나 자신의 어두운 면, 모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그것을 절단해내려면 엄청난 인내와 끈기,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쉽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은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이다. 마치 암투병을 하는 환자가 도리어 병보다 항암치료가 더 괴로워 투병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힐링은 어렵고, 반드시 고통을 동반한다. 반드시.

  요새의 트렌드가 이야기하듯, 무언가를 소비함으로서 곧장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 순간 정말로 내가 아프다면, 괴롭고, 지치고, 힘들고, 눈물이 난다면, 한순간의 마취제로서 힐링을 논할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은 나 자신만이 안다. 마취제도, 진통제도 없다. 조력자는 있을지언정 조력자의 존재 때문에 갑자기 병이 나아버리는 일은 없다. 자신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보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힐링’이란, 그 어떤 누구도 대신 해주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니 간곡한 마음으로 나를 비롯한 나의 친구들, 혼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우리들에게 권고해주고 싶다. 그대들, 힐링이란 말에 너무 쉽게 현혹되지 말지어다! 그리고 부디, 자기 자신을 살피기를.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오래도록 시간을 들여 나 자신을 다독이기를. 너무 아프다고 포기하지 말기를. 당신 삶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실로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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