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요?”

  최근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 전공은 북한정치⋅군사 분야가 아니라 북한사회 영역이고 주민들의 일상생활이나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좀 회피해 보려고 해도 큰 효과는 없다. 다른 사람이 또 질문을 하기 전에 바쁜 일을 핑계로 일어나면 다행인데 그런 기회는 대부분 놓쳐 버린다. 때때로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하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하는 마음에 안도하는 심정에 빠져 드는 경우도 있다.

  질문이 나오는 순간부터 내심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자고 있는 뇌세포를 총동원해 그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찾는다. 질문을 듣기 전부터 몇 가지 시나리오에 맞게 대답을 준비해 두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끊임없이 혼자 생각을 굴린다. 이번에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질문한 사람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할까?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내 허락을 얻어서 전쟁을 일으킬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고통을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분위기를 살펴보지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내놓지 않은 내가 조용히 떠나도록 허락해 줄 것 같은 기색이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 흉내를 내보기로 한다. 마치 점술가라도 된 것처럼 나지막한 소리로 답을 내놓는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북한당국도 지금 상황에서 전쟁을 시작하면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내 희망은 여지없이 무시한 채 다음 질문이 쏟아진다. “확실한가요?” 별 수 없이 점술가 흉내는 포기하고 사회과학자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한다. “확률을 말씀드린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95% 수준은 됩니다.” 상대방의 표정을 관찰한다. 95% 수준이라니 무슨 뜻이냐 하고 묻는 것 같다. “전쟁이 날까봐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대답을 들은 상대방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마음대로 인심을 쓰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을 99%로 올려 드릴까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너무 마음을 놓으면 오히려 내가 불안해진다. 사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을 말하면서 확률이 95%라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 말은 곧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5% 수준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0.1%, 0.01% 미만이라고 해도 절대 소홀하게 넘어갈 수 없지 않은가?

  조용히 피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마음을 다잡은 채 상대방의 눈길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전쟁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대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할 때입니다. 3년 전, 우리의 아까운 젊은이 46명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 같은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고 물어보는 상대방의 눈길이 강하게 느껴진다.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전쟁이라도 상대방을 알고 자신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평소 북한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당연히 예측도 어렵지요. 전쟁을 막는 것도 그만큼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공부하세요!”

  이런 설득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늘도 북한학과 교수의 일상은 멀고도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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