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 유행 절대 안타는 미국에서나 허용될 법한 복고풍의 양복을 입고 처음 면접을 보러 학교에 왔던 날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당시 유행하던 것에 비해 적어도 두 배 넓이의 넥타이를 하고, 두 배 크기의 금테 안경을 낀 나는 지금도 가끔 학과에서 회자되는 전설의 패션테러를 저지르며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의 보무당당함은 잠깐, 과연 이 여학교를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가 정말 난감했다. 여기는 과연 나를 받아줄 것인가? 수위아저씨와 눈싸움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이제는 여기가 금남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정말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신기함과 설렘이 이화여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는 첫 단상이었던 것 같다.

  이대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말과 글의 변화다. 이메일 체는 이제 확연히 변했다. 이전에는 '~다' 체로 끝나던 문장은 요즘은 '~요' 체로 많이 끝난다. 말은 확실히 부드러워졌고, 쓸데없는 군대문화로 피곤한 상황은 많이 줄었다. 대부분의 남자사회는 마초 경쟁이 있는데, 적어도 이대 내에서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동료 남자교수들 중에 여자들과 이야기할 때는 마음이 편안한데, 남자가 끼게 되면 오히려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꽤 되는 것 같다. 확실히 커피 한 잔을 놓고 몇 시간을 수다 떨 수 있는 능력은 오랜 수련을 거쳐야만 가능한 신공이다. 학생들을 대하는 것도 많이 편해졌다.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특히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케이크와 쿠키 문화에 적응하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하지만 많이 분위기에 동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통수를 때리는 일들도 있었다. 한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이 내리고 나자 같이 동승했던 선배 여교수님이 "우리 아이들이 요즘 너무 예의가 없지요? 선생님께서 이해하세요"라는 것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라니? 그럼 나의 역할은 뭐지? 일순간 뭔가 소리 없이 범주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가끔씩 느끼게 되는 손님대접은 정말 내가 주류가 아니라 아웃사이더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 아주 기분이 별로다.

  남자교수가 가진 지울 수 없는 마초 본성도 가끔 충돌을 일으킨다. 나도 삼선 실내화를 바깥에 질질 끌며 돌아다니는 학생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작 이야기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한 교수님이 그것을 지적했다가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는 것을 목격한 적은 있다. 지적을 받은 여학생이 학교 측에 정식으로 불만을 접수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교수님이 꽤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바깥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마초 규범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마초를 면할 수 있겠는가? 마초가 아닌 척 가장도 하고, 마초가 오히려 불편하니 내려놓기도 하지만, 그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런 경험들이 쌓여갈수록 교육적인 조언에는 자꾸 냉담해져가게 된다. 왜냐? 어떤 것이 나의 마초 본성인지, 순수한 교육적인 의도인지 구별하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대에서 남자교수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소수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많은 여성들이 소수자로서 겪는 어려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우리도 짝퉁 소수자다. 하지만 소수자는 어디나 서럽다. 소수자가 주류 사회에 대응하는 방법은 동화, 무시, 저항 등 여러 가지겠지만, 내 생각에는 무시하는 쪽의 남자교수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무시가 저항보다 더 치명적이다. 사실상 학교의 제도, 규정, 분위기 측면에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들이 많지만, 무관심은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이대 남자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형(?)이다. 자신의 마초 본성을 스스로 자기검열하면서 살아가는 남자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이대의 소수자들이 처음 가졌던 설렘을 유지하면서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다수자들의 많은 배려와 격려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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