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
  • 양종만 교수(물리학과)
  • 승인 201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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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해보라

  지금까지 겪은 사건들 중 가장 힘들었던 두 가지 사건을 생각해본다.

  # 먼저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사건.
 
  2006년 1월 8일 일요일 아침 8시 반. 장소는 남극 대륙 미국 맥머도(McMurdo) 기지. 32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여러 대의 설상차를 나눠 타고 기지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페가서스 비행장 – 사실은 100여 미터 이상 두께로 얼어붙은 광활한 바다 위 –에 도착하여 몸을 풀기에 바빴다. 나는 며칠 전 난생 처음 타보는 컨트리스키(일명 노르딕스키)를 신고 저 멀리 아스라이 20km 너머의 스코트 기지를 내다보았다. 32명의 건각들이 마라톤 또는 1/2 마라톤을 하겠다고 모여든 것이다. 14명은 전코스 달리기, 10명은 스키, 12명은 1/2 코스를 신청하였다. 나를 포함 네 명만 1/2 스키를 신청했다. 물론 대부분이 20대 청년들이고 나처럼 50대 후반은커녕 30대 이상 40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힘껏 뛰다가 잠시 쉬는 테니스나 스키 같은 운동은 하루 종일 계속해도 별로 힘든 것을 모르지만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 달리기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여 지금까지 가장 멀리 달려본 것이 2006년 3만6천명이 응모한 한국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3.5km를 달려 겨우 기준시간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 때 필기시험, 기초체력평가 등을 거쳐 1차 500명을 선발했는데 56세로 최고령이라 했다. 

  맥머도 기지에는 약 1천200명이 머물고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초대형 설상차를 운전하거나 기지 내의 각종 업무를 담당하는 젊은 여성들도 참 많았다. 선수의 상당수가 젊은 여성이었다. 나는 눈으로 덮인 허허벌판 21km를 마냥 달리며 땀으로 멱을 감고 다리는 쥐가 날 지경이고 심장마비에 걸릴 정도의 극한 상황 속에 무념무상 경지를 헤매고 있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젊은 여성들이 몇 명씩 떼를 지어 율동과 기계체조, 온갖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며 42km를 달리는 광경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 곁으로는 구급차 여러 대가 사고를 대비하여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나름 체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날까? 나의 고통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기록 3:38:10, 달리기 전코스 최고기록 3:45:10, 스키 1/2 최고기록 2:59:15 ]


# 다음은 정신적으로 올인했던 사건.

  1969년 6월 11일부터 23일까지. 장소는 서울 동숭동 하숙집. 대학 신입생이던 당시 3선개헌 반대데모를 빌미로 독재정권은 대학문을 걸어 잠갔다. 우린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야 했었다. 매년 되풀이되는 휴교로 교과서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수백 쪽 십여 장 원서를 교과서로 택하곤 했지만 항상 서너 장 정도 배우고 끝내기 일수였다. 아무튼, 대학에 갓 들어와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려던 계획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물리의 기초가 되는 미분적분학 강의를 한 달이나 했을까 그러고는 휴교였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입학이 우선이라 내가 공부하고 싶은 좋아하는 과목 공부는 하지 못하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국어, 영어 등)만 공부해오던 터라, 나는 그 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아무 거리낄 것 없는 상황 속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해보자고 생각했다. 교양과정부 수학교수들이 집필한 600쪽 미분적분학이란 깐깐한 교재를 홀로 격파하는 목표를 세웠다. 나는 하숙집에 눌러 않아 13일 동안 낮에 잠시 과외가정교사를 하는 외에는 두문불출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벗어 던진 채 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책 속에 완전 몰입하였다. 모든 수식을 증명해보고 연습문제를 다 풀어보았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고 자신감으로 충만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7월 25일부터 8월 28일까지 560쪽 원서를 구해 같은 방식으로 독파하였다.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나와 같이 공부하는 학과 친구들은 물리 공부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역시 기초가 튼튼하면 천 년을 버티는 건물이 지어진다더니 맞는 말이다.

  이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이화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 하기 힘든 것, 어려운 때, 하기 싫을 때가 있지만 가급적 남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신념을 가지고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열심히 해보라는 것이다. 어떤 고비를 지나고 나면 드디어 양탄자 길은 아닐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