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연재>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1)
<학술연재> 초현실주의의 기법과 창의성 계발(1)
  • 조윤경 교수(불어불문학과)
  • 승인 201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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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위에 놓인 가재는 아름답다


  전화기 위에 놓인 가재는 아름답다


  지난 겨울 오랜만에 방문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살바도르 달리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각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꼬박 두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간신히 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세기 초·중반기에 활동했던 이 초현실주의 화가의 어떤 매력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을 여전히 사로잡는 것일까? 하이힐을 마치 피자처럼 뜯어먹는 사람의 얼굴, 축 늘어진 머리를 지팡이로 지탱하고 있는 할아버지, 서랍 달린 비너스 등 다채로운 그의 작품은 이성과 논리의 세계를 벗어난 다른 세계, 다른 영역을 지향한다. 그것은 바로 꿈과 광기, 무의식, 상상력, 경이로움의 세계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화두인 이 시대에 ‘정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그의 작품은 끝없이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시작으로 양차대전 사이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초현실주의는 전쟁을 초래한 문명을 거부하고 억압된 정신적 힘과 욕망을 해방하고자 했다. 초현실주의에 가담한 예술가들은 시인, 화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했으며, 이들의 국적 또한 다양했다. 이들은 고정된 유파이기를 거부하고, 서로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내적인 신비를 체계적으로 발견해나갔다. 자동기술법, 꿈 산문, 언어시각적 유희 등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적 기법들은 일상의 관습화된 시선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자하는 현대인들에게 실천 가능한 여러 사례를 제공해 준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해내는 기법이다. 초현실주의 시인과 화가들은 19세기 시인인 로트레아몽의 “해부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는 시구를 자신들의 모토로 삼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비올 때 우산을 쓰고, 옷을 수선할 때 재봉틀을 사용한다. 또한 인체나 다른 생명체를 해부할 때 해부대(解剖臺)를 사용한다. 즉 이 세 사물들은 서로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질적인 사물들이 낯선 제 3의 공간에서 만났을 때 발생하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강조했다. 그들은 이것을 “경련이 이는 아름다움”이라 부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낀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꾸고자 했다. 전화기 위에 가재가 놓여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작품은 이 낯선 아름다움의 원칙을 구현한다.

  “바구니와 포도가 푸른 도로 위에서 만나리라/그 충격으로 커다란 젖가슴이 솟아나/윤기 잃은 지평선을 뒤덮으리라/그것은 정의가 되리라” (벵자멩 페레, 『돌 안에서 잠들다 잠들다』 일부) 초현실주의 대표적인 시인인 페레는 푸른 도로라는 제 3의 공간 위 바구니와 포도의 만남을 이렇게 노래한다. 바구니와 포도는 서로 그다지 낯설지 않다. 바구니는 포도를 담아두는 포도 바구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만남이 초래하는 놀라운 결과를 여기에서 솟아나는 커다란 유방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 시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만나는 두 요소 간의 먼 거리가 아니라, 만남의 신비로운 결과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연쇄적으로 반작용이 일어남으로써 최초의 만남이 초래하는 놀라운 결과들이 이어진다.

  초현실주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실험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우발적인 아름다움의 원리를 응용하여 놀라운 발견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 서체 수업을 청강한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예는 대학생들의 전공·교양 수강 선택에 있어서도 전화기 위에 놓인 가재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전화기와 가재라는 전혀 이질적인 두 대상처럼 당장 생각하기에는 내 전공을 심화시키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다른 분야를 과감히 수강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저 다른 분야를 한번 경험해 보는 ‘체험학습’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안전한 청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수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분야가 가진 새로운 체계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다시 불문과 전공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꼭 화학과 실험실습 수업을 수강하고 싶다. 그리고 새(鳥) 연구 동아리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연구하는 인문학에서 중요한 생명과 변화의 원리를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유일한 사람이 되려면 안전하지 않은 길, 이미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20세기 초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에 희망의 빛을 던진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 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