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신촌 유플렉스(U-PLEX)에서 촬영한 신촌 명물길 전경 고해강 기자 boxer@ewhain.net

<편집자주>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2011년 발표된 UV의 노래 ‘이태원 프리덤’의 가사다. 이 노래가 발표됐을 때 신촌의 대학생들은 공감하면서도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촌은 두말할 필요 없는 대학생 문화의 메카였으나 지금은 신촌 지역 대학생도 신촌에 잘 가지 않는다. 대학생 문화의 퇴조 탓에 불과 몇 년 사이에 당대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신촌 일대가 명성을 잃은 것이다. 상권이 발달하고 지대가 올라가면서 대학 문화의 중심으로 의미 있던 신촌이 대기업을 등에 업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본지는 현재 신촌이 대학생의 메카였던 자신 만의 특색을 잃고 있는 상황을 짚어봤다.

  신촌 상권이 프랜차이즈 상점(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재자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자기 상품에 대하여 일정 지역에서의 영업권을 주어 시장 개척을 꾀하는 방식)에 잠식당해 지역색을 잃고 있다. 사람이 몰리는 지역은 해당 지역만의 문화 코드와 상징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에 신촌은 과거 문화적 기반이 됐던 대학생 문화가 쇠퇴하고 개인사업체가 감당하기 힘든 높은 임대료가 형성되면서 특징을 잃었다.


△신촌 일대 점포 중 약 80%가 프랜차이즈

  요즘은 신촌에서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으면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고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먹고 ‘탐앤탐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은 ‘미스터 피자’에서 해결한다. 이는 강남, 명동, 부산 서면 등 전국 어느 번화가에서도 똑같이 가능한 일이다. 이를 ‘프랜차이즈 라이프(Franchise Life)’라고 한다. 이 단어는 아침 시작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모든 생활에 프랜차이즈 시장이 적용된다고 해서 생겨난 신조어로 최근 우리 주변 상점 풍속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지난 몇 년간 프랜차이즈는 꾸준히 업체 수를 늘려왔다. 2010년 전국경제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 및 주점업을 경영하는 58만6천개 사업체 중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가입한 사업체는 8만5천430개(14.6%)였다. 특히 기타 음식점업(제과점, 피자, 햄버거, 휴게음식점 등)은 가맹점 가입 비율이 44.7%나 됐다. 일반음식점업(6.2%)의 7배가 넘는 수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증가를 훨씬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번화가다. 본지가 6~7일 현재 신촌로(이대역~신촌역), 연세로, 명물길, 이화여대길에 있는 식품접객업 점포 중 프랜차이즈 상점을 조사한 결과, 전체 224개 점포 중 176개(약 78.57%)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나타났다.

  프랜차이즈 상점이 번화가에 몰리는 이유는 상권이 번화할수록 높아지는 월세와 권리금을 자본력이 충분해야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촌은 대학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적 이점 때문에 상권이 번화했고 이 때문에 월세 또한 급격히 상승했다. 급격히 상승한 권리금과 월세는 소자본인 영세 상인이 감당할 수 없었으나 프랜차이즈 상점은 자사의 자본력을 지원받을 수 있어 높은 임대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자본의 흐름에 따른 현상인 동시에 신촌만의 문화적인 특색을 사라지게 했다. 이지은(심리·10)씨는

  “학교 근처에 자취한 지 4년째인데 지방에서 친구들이 올라와서 신촌의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하고는 데려가면 어디에나 있는 음식점이 아니냐며 불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약 30년간 신촌에서 음식점을 영업해 온 ㄱ점포 주인은 “현재 신촌에 남아있는 영세 상인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자기 건물을 소유하지 못한 점주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영세 상인들은 프랜차이즈 때문에 고통 받아

  지금도 신촌 일대는 연간 약 2조원의 매출과 하루 약 10만명의 유동인구를 가진 대형 상권이다. 재작년 매일경제신문과 SK텔레콤 ICT사업팀 지오비전이 함께 조사한 ‘대한민국 100대 상권 분석’에 따르면 신촌역과 이대역 상권은 각각 12위, 98위를 기록했다. 카드 매출액 등과 휴대전화 통화량 등을 기초로 분석한 신촌역 상권의 연 매출은 약 1조4천247억원, 유동인구는 6만6천539명이었고, 이대역 상권의 연 매출은 약 4천982억원, 유동인구는 4만5천210명이었다.

  영세 상인은 신촌 일대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인한 신촌의 문화적 쇠락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8년 만에 할머니의 뜻을 이어 같은 자리에 문을 다시 연 ‘독수리 다방(독다방)’ 손영득 사장은 독다방을 다시 열게 된 계기에 대해 “대학생만의 문화가 사라지고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이 즐비한 신촌 거리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상점은 영세 상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라이벌이다. ㄱ점포 주인은 “근처 대로변에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상점의 경우 월세가 약 2천만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며 “임대료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어 영세 상인이 발을 붙일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체는 점포 운영에 대한 부담도 프랜차이즈 상점보다 더 크다. 프랜차이즈 상점은 재료 혹은 완제품을 본사에서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세 상인은 재료 선택부터 가게 경영까지 모두 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 이는 개인사업체와 가맹점 간 상품 가격 차이로 이어진다. 독다방의 손 사장은 “프랜차이즈 상점은 본사에 디자인, 메뉴 개발, 경영 전략 등 사내에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직원들이 많지만, 영세 상인은 주인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며 “본사는 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해 개인사업체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영세 상인은 더욱더 힘들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상가정보연구원 박대원 소장은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상권력이 좋아 권리금과 월세가 높은 신촌 지역에는 이 같은 보호법에 대한 실효성이 거의 없다”며 “신촌 상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부와 일부 지자체에서 상인들의 권리 보호는 아직까지는 많이 미비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작년 신규 출범 점포에 대해 같은 브랜드 점포 간 직선거리나 도보거리를 250미터~1천500미터로 제한하는 모범거래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 상인은 이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박 소장은 “유사업종 상점에 대한 규제가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지자체의 단속 등은 실제 잘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며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영세 상인이 프랜차이즈 상점과의 자본력 경쟁에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도 작년 12월 신촌번영회, 연세대와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실효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영세 상인을 지지하는 대학생 문화 부족

  약 30년째 연세대사거리 앞에서 독수리 당구클럽을 운영 중인 박상숙 사장은 달라진 대학생의 모습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박 사장은 “당구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게임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문화를 공유하던 것과 달리 요즘 대학생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며 “요즘 학점,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로 캠퍼스의 낭만으로 불리던 대학생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980~1990년대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기성세대들은 신촌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홍익대 앞과 대학로는 각각 클럽 문화, 연극 문화 등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코드가 아직 남아있는 것에 비해 신촌에는 예전 상권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던 라이브 클럽이나 레코드 가게 등이 사라졌다. 김경현(과교·95년졸)씨는 “최근 신촌에는 대학 생활을 할 당시에 느꼈던 신촌만이 가지고 있는 대학생만의 문화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며 “신촌을 대표하던 공간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온갖 프랜차이즈 상점으로 뒤덮은 신촌의 모습에 후배들이 대학 문화를 즐길 공간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다방에서 대학생이 나누던 민주화와 한국 역사에 대한 고찰과 토론에 비해 지금 카페에서 오가는 대화는 대학생만의 문화를 상징하지 못한다”며 “예전 독다방이 민주화를 논하던 시대 대학생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던 공간이었던 것처럼 요즘 대학생에게도 그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공동체 의식이 줄어든 대학생의 모습도 대학 문화의 기반을 약하게 한 요인이다. 박 사장과 손 사장 모두 이 점이 잘 드러나는 사례로 ‘연고전(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 학교 대항전)’을 꼽았다. 이전보다 연고전의 열기가 덜하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1980~1990년대 연고전은 대학생의 대표적인 스포츠 문화로 연세대, 고려대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생을 뭉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행사였다. 하지만 연고전 또한 세대를 거치며 변해왔고 각 시대 학생들의 성향과 시대상을 반영하며 그 열기 또한 많이 줄었다.
박 사장은 “당시 연고전 시기가 되면 신촌 거리가 열정 넘치는 대학생으로 가득 찼지만, 요즘은 그때 열기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연세대 졸업생 배경환(경영·93년졸)씨도 “연고전은 연세대와 고려대, 단 두 학교만의 행사가 아닌 대학생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였다”며 “신촌 전체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가게 이모님들께 술을 얻어 마시며 지역 주민까지 함께 울고 웃었던 연고전이 그립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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