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케이블채널을 통해 영화 ‘도가니’를 보며 이 영화가 주는 진한 여운과 파급 효과를 다시금 실감했다.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세상에 알리고 사회문제를 바로잡는데 기여한 영화 ‘도가니’를 많은 언론과 여론은 높이 평가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회취약계층인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재조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영화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씁쓸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청각장애 학생 성폭행 사건은 광주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무려 5년여 동안 벌어진 실화다. 이 사건은 2005년에 MBC PD수첩을 통해 심층보도 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09년 소설가 공지영씨가 ‘도가니’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발표했지만 소설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오히려 2011년 영화가 개봉된 이후였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은 영화 개봉시기 이전까지는 사람들과 언론의 무관심 속에 사회의 주요 이슈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건이 발생하고 알려진 시기는 영화 개봉일로부터 6년 전인데 2011년이 되서야 실태조사와 가해자들의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고 재발 방지 법안들이 통과됐다. 뒤늦게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의 대책 마련에 기여한 영화의 파급력만을 호평하기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도가니’ 사태를 계기로 통과된 개정 법안들은 유사사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뒤늦은 법적 처벌만으로는 이미 성인이 된 인화학교 피해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 이들에게는 5년간의 끔찍한 사건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의 대책들은 이들에게 어떠한 피해보상도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밝혀지고 시정되어 다행이라는 인식보다는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사건 발생 이전에 사회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실현 시킬 수 있는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건에만 열을 올린다. ‘도가니’라는 영화가 흥행하지 않아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장애학생의 성폭력 사건을 대대적으로 고발하고 대책방안을 모색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사건이 2005년부터 조금씩 문제제기 되어왔지만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그 당시에는 매체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주제들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미디어는 수많은 사회 문제 중에서 화제 거리가 될 만한 이슈를 선택적으로 선별해 보도한다. 시청자들은 미디어의 선별성만이 우선시되어 언론매체에서 부각되는 이슈들을 수동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미디어가 선택한 이슈거리에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매체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주류 이슈들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심각한 문제로 전락해버린다.

  미디어의 의제 설정에 끌려가지 않고 시민들이 좀 더 많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사건이 6년이나 지나 관심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슈에만 동요되어 열을 올리기보다는 시민들이 스스로 그러한 문제에 귀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사회전반에 고취됐으면 한다.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SNS에서 대화의 화두가 되는 주제 그리고 주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사건들에만 해박했던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영화, 뉴스 그리고 SNS가 주목하는 문제들이 아닌 사회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문제점들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정보를 직접 찾아보는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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