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문대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골자는 인문대 학생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몇 기업에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라는 조언이었다. 댓글과 여러 글을 통해 성적표가 C, D의 향연이 되더라도 경영, 경제학의 복수전공 딱지가 중요한 스펙이 된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고 이미 다른 선택을 한 학생들, 혹은 복수전공 선택을 앞둔 몇 학생들은 이와 같은 현실적인 조언에 좌절하는 듯했다. 글을 내려읽으며 참 많이 씁쓸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경제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하기 싫은 수학 공부로 머리를 싸맸다. 그런 나로서는 대학에서만큼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나의 공부는 꿈과 같았다. 더 이상 숨겨진 χ를 찾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그래프를 해석하지 않아도 됐다.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 삶에 대해 탐구했다. 교수님께서 던지는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국문학이 좋았다. 복수전공을 고려할 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정치외교학을 택했다. 그 이유도 한 가지였다.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바보인가? 경영, 경제학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는 꾸준히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서 취업을 위한 공부보다는 삶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학교생활이 참 좋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진 대학생활 마저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맡겼다면 이렇게까지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떠밀리듯 경영, 경제학을 선택해야하나 고민 중인 인문학도들이 있다면 먼저 그들이 규정지은 그 몇 기업에 왜 가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혹시 사회가 성공이라고 규정해놓은 틀에 맞추어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주입식이라며 우리나라 공교육을 비난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선택권을 지닌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주입식 취업시장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 그저 관성일 뿐이다.

물론 그 기업을 정말 목표로 하거나 경영,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확실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의 선택까지 비판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그들의 꿈이 아닌가. 누구도 다른 사람의 꿈을 평가할 권리는 없다. 다만 나는 다른 공부를 하고 싶지만 사람들, 사회의 잣대에 휘둘려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경영학을 선택하지 않으면 무(無)가 되는 게 아니다. 단지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는 분야가 다른 것이다.

결국 졸업 이후 내가 성공할지(성공의 기준도 모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한 삶을 살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고 잘 하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멋진 선배님들을 배출한, 내가 사랑하는 이화에서 그렇게 가르쳤고 또 나는 이화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가고자 하는 길이 어두워 보일 지라도, 당장은 걱정에 눈앞이 캄캄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믿자. 언젠가는 학관 앞 목련처럼 활짝, 웃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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