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가치 만드는 문화중심지”

▲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홍익문고 지키기에 지금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작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세요. 혹시 10년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홍익문고를 보고 뿌듯함을 느끼게 될지 몰라요. 또, 먼 훗날 이화인이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을 떠올리며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라요.”

홍익문고는 서대문구청의 도시계획에 따른 재개발 예정 구역에 포함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홍익문고를 지키기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로 서대문구의 계획은 철회될 수 있었다.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에 참여한 졸업생 정성순(통계·02년졸)씨를 11월27일 오후에 만났다.

11월18일 포탈사이트 네이버 메인 홈페이지에는 ‘신촌의 랜드마크인 홍익문고 일대가 재개발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게시됐다. 기사가 나간 지 10일만에 ‘홍익문고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75개 지역 단체, 약 5천명의 주민이 모여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을 만들었다. 행복한 아이포럼 정성순 공동대표는 지역 내 다른 모임의 대표들과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속한 행복한 아이 포럼은 서대문구에 사는 학부모들이 육아부터 사회문제에까지 생각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대표들끼리 모여있는 카카오톡 채팅창에서 홍익문고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바로 다음날 대표들이 모여 임시 주민대책위원회를 열었고,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이라는 이름도 짓게 됐죠.”

정씨는 다른 회원들보다 홍익문고에 대한 애착이 특히 컸다. 그의 대학 시절, ‘기다림과 만남의 장소’였던 홍익문고에는 정씨의 추억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삐삐가 유일한 이동 연락수단이었던 시절, 근처에 공중전화가 없으면 삐삐를 잘 확인하지 못 하기도 했어요. 친구를 기다리다가 친구와 연락이 잘 되지 않으면, 홍익문고 메모판에 ‘일이 바빠서 집에 간다’는 쪽지를 붙이기도 했죠. 홍익문고 메모판에는 이 같은 쪽지가 항상 수두룩하게 붙어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홍익문고에서 약속을 기다렸어요.”

이런 이유로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정성순씨는 이 운동에 본교 학생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연세대 한 학생은 11월23일 열린 홍익문고 지키기 기자회견에 신촌 학생 대표자로 참석하기도 했어요. 그를 보며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에 본교 후배들도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곧장 본교 총학생회부터 동아리 등을 대상으로 참여 의사를 묻는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렸어요. 결국 본교 2개 학생 모임(이대학보사 기자일동, 천문동아리 폴라리스)이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에 동참하게 됐죠.”

정씨는 온라인 서점의 성장이 홍익문고 같은 동네서점의 입지를 축소하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이 성장하면서 95년 약5천개였던 동네서점은 현재 1천723개 남아있다. 그는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을 읽고,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도 동네 서점이 줄어든 원인”이라며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동네서점을 살리려면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홍익문고의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익문고는 서대문구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정씨는 동네 서점이 단순히 옛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남아있는 문화’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

“서점이 사라지는 건, 책의 선택권도 줄어드는 것과 같아요. 잘 팔리는 책 위주로 판매되는 인터넷 서점과 달리, 동네 서점은 책이 골고루 판매되기 때문이죠. 서대문구는 ‘생활문화를 창조하는 품격있는 서대문’을 홍보문구로 내세우는데, 문화의 거점인 동네서점이 사라져서는 안 되죠. 홍익문고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거든요. 서대문구의 유일한 동네서점인 홍익문고를 살리고, 동네서점이 증가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정씨를 비롯한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 모임 회원들은 서울시가 최종적으로 ‘홍익문고를 보존하겠다’는 결정이 나기까지 모임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을 지지하는 단체를 더 찾을 예정이죠. 이번 모임처럼 단시간에 많은 이가 참여한 것은 서점이 존재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잖아요. 홍익문고 지키기 모임이 ‘동네 서점 수를 늘리는 운동’으로 이어지도록 방안을 구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이화 후배들도 저희 운동에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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