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10년 기준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 중 28위로 최저 수준이다. 이는 한국 경제규모가 OECD국가 중 10위인 것에 비해 여성 경제활동이 여전히 저조함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이화인이 있다. 그 중에서도 소위 ‘남성의 영역’이라 불리는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이화인. 그들이 어떻게 여성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의 ‘유리 천장’을 깨고 일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연재한다.

병무청은 우리나라 병무행정을 관장하는 곳으로 1970년에 처음 국방부의 외청(국가의 행정 조직에서 특수성을 가지는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창설됐다. 이곳은 진정한 남성의 영역인 ‘병역’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남성 직원이 다수이고, 사내 분위기 역시 남성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병무청 전체 직원 중 5급 사무관 이상의 여성 직원은 11명(약 0.6%)이다.

이 안에서 병무청 최초의 여성 사무관 출신인 이화인이 있다. 바로 산업지원업무과 홍승미(교육학과·95년졸) 과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병역 자원을 충원 및 분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홍 과장은 83학번으로 입학했지만 학교를 그만 뒀다가 졸업에 대한 아쉬움으로 93년에 재입학했다. 그가 처음 입학할 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그는 동아리나 학회 활동에 몰두했고 자연스럽게 학업에 소홀해지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러나 그가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발언을 하고픈 시점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학교를 그만 둔 후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회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대학 졸업장’ 없는 상태에서의 활동은 전문성이 약했어요. 제 발언의 영향력도 약했고요. 이런 아쉬움 때문에 재입학한 뒤 열심히 공부 했어요”

늦깎이 학생으로 졸업한 홍 과장을 공무원의 길로 이끈 것은 그의 무모한 도전정신이었다. 그가 공무원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30대, 심지어 결혼 후였다.

“성별, 출신 등에 대한 제약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성공하는 분야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공무원’이었고 그 때부터 행정고시 공부를 했어요. 30살이 다 된 나이에 재입학을 했기 때문에 행정고시를 결심한 후 ‘무모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제 결정을 믿었고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했어요.”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첫 근무지를 ‘병무청’으로 택했다. 그가 입사한 병무청은 당시 남성 직원에 비해 여성 직원이 월등히 적었다고 한다. 또한 근무하던 몇몇 기능직 여성 직원마저도 결혼과 육아 등으로 퇴사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여성 직원이 소수인 병무청에서 그는 똑 부러지는 성격과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유리천장을 느꼈다. 

“저를 항상 따라다니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에 대한 관심과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어요. ‘처음’이라서 거는 기대보다는 배려가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해요. 저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를 바라고, 또 그런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일 했던 것 같아요.”

그는 15년 간 남성의 영역인 병무청에서 ‘강한 리더십’으로 부하 직원들을 이끌어 왔다. 강한 리더십을 앞세운 홍 과장의 딱딱하고 강한 면 때문에 그를 군인 출신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병무청의 사내 문화는 냉랭하고 경직돼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제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병무청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었어요. 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 보다는 거칠고 공격적인 ‘여장부 스타일’이에요. 그 점이 다른 여성 리더들과 다른 것 같아요. 이런 점 때문에 군인 출신 이냐는 말을 종종 듣곤 하죠. 하지만 이런 점들이 저를 일과 하나 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홍 과장은 올해 초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했다. 그는 ‘가족들의 도움’을 승진의 이유로 꼽았다.

“저 또한 집에서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에요. 특히 다섯 살짜리 ‘왕’ 늦둥이의 엄마죠. 늦둥이를 출산할 때 일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워낙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다보니 사내에서도 이슈가 됐고 병무청 내 ‘기네스 기록’에도 가장 고령 출산자로 기록됐죠.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해주는 것은 가족들의 응원과 힘 덕분이에요.”

그는 병무청에서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근무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진정성만 가지고 있다면 철옹성 같아 보이는 현실의 장벽도 서서히 무너질 수 있어요. 여성이 소수이기에 겪는 환경을 ‘두려움’보다 자신을 키우는 ‘기회’로 생각하세요.”

마지막으로 그는 취업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후배들을 향해 조언했다.

“제가 처음 ‘행정직’에 대한 꿈을 꾼 것은 30대였어요. 그 당시에도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제 자신을 믿었죠. 그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제고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를 생각하며 용기를 가지시길 바라요. ‘늦었다’는 순간 그 앞에 보이는 기회를 꼭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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