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스무 번은 본 “우리이화” 선본의 선전물을 오늘도 보면서 문득 ‘아…’하고 탄식을 흘렸다. 결코 “우리이화” 선본의 어떠함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제외한 우리들의 어떠함 때문이다.

  이번 총학 선거에서 정후보로 나선 봉우리 후보는 음대 소속이고, 부후보로 나선 김경내 후보는 자연대 소속이다. 고등학생 때 더 이상 소위 “운동권”이 총학에 당선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으며 멋도 모르고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는 “운동권”을 고사하고 인문, 사회대 소속 후보조차 없다.

  말했다시피 필자의 목적은 “우리이화” 선본의 어떠함을 짚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참정권은 모든 인류의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전공의 후보가 나왔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에 보다 밀접하게 관련 있는 전공은 예술이나 이공계열이 아니라 인문, 사회계열임에 다들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인문, 사회계열은 학문적으로도 정치와 더 연관이 깊을뿐더러, 고등학교부터 문․이과로 나뉘는 한국 교육의 특성상 정치 관련 지식도 대체로 더 많으며, 그 관련된 길을 자신의 길로 믿고 대학을 선택한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올해 총학 선거에 그들은 없었다.

  19일자 이대학보 1면에 실린 “단대 후보 등록 현황 및 공약”에서도 거의 모든 단대에서 단일 선본이 출마했고, 음대만 두 선본이 출마한 것이 확인된다. 지난 학생총회에서도 가장 열의를 보였던 단대는 조예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직접적으로는 경제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400만원 남짓, 혹은 채 되지 않는 인문, 사회대의 등록금에 비해 이공계 및 예체능 관련 단대의 등록금은 백만 원 이상이 차이가 난다. 그들의 필요가 더 시급했던 것이다. 깊이 파고들면 우리나라 교육 정책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적성을 탐구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문․이과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에 몰려, 단순히 “수학이 좋다” 혹은 “영어가 싫다” 등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렇게 막연히 선택하고, 막연히 공부하고, 막연히 성적에 맞추어 온 대학에서 뒤늦게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우리의 어떠함조차 우리의 어떠함이라고 지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의도치 않은 선택과 결과라 할지라도 과거를 헛되이 하지 말자. 소크라테스는 지행합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행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행동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공부했던 지난 12년을 헛되이 하지 말자. 피선거권만이 참정권은 아니다. 선거권도 참정권이다. 이 글이 학보에 실릴 때쯤이면 이미 총학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하자고 주장하기엔 늦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크고 중요한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배웠던 모든 앎을 동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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