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들여다본다. 이 정도면 괜찮은지 말해본다. 여기엔 각자가 생각하는 ‘괜찮다’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괜찮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가? 혹자는 흔히 말하는 예쁜 사람이 기준이 될 것이고, 혹자는 눈, 코, 입, 귀가 다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괜찮다’라는 언어에는 많은 뜻이 담긴다. 기분이나 상황에 대한 답변이 될 때도 있고, 어떤 것의 상태를 이야기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이 괜찮다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 말 안에 다양한 의미가 함축 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상황처럼 외모에서의 괜찮다는 것은 별로 나쁘지 않아 보통 이상임을 의미한다. 보통 어떤 것을 괜찮다고 할 시에 이것은 한 가지의 뜻으로만 쓰인다. 이것은 사물을 ‘괜찮다’라고 할 때 그 사물의 다양한 특성이 괜찮다는 말 안에 포함되어 한 가지 뜻으로 나옴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정은 사물의 다양성을 한 가지 특성 안에 넣는다. 다양한 사물의 특성이 흔히 보이는 괜찮다는 말로 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 어떠한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여러 면이 무시되고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남는다. 또한 감정은 대체로 복잡하지만 이것을 ‘슬프다’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시 이 감정은 보편적인 ‘슬픔’ 안에 갇힌다. 이것은 다양한 것을 하나로 줄임으로 세상을 보편화하기 함에 기여한다. 이러한 보편화를 통해 소수가 다수를 포함함으로 가지게 되는 것은 권력이다. 이때 다수는 소수 안에서 소화됨으로 다수가 다수 자체가 아닌 소수로 획일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삶 곳곳에 있다. 어떤 것을 생각하고 이야기 할 시 규정이 갖는 권력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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