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이 쓴 본격적인 여행기로는 <의유당관북유람일기>와 <호동서락기>를 꼽을 수 있다. <의유당관북유람일기>는 의령 남씨(1727~1823)가 남편을 따라 함흥으로 가서 여행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는 <동명일기(東溟日記)>를 비롯한 <낙민루>, <북산루> 등의 한글 작품이 실려 있다. <호동서락기>는 김금원(1817~?)이 제천, 금강산, 설악산, 의주를 여행한 뒤 서울로 돌아와서 용산 삼호정에서 지내던 일을 기록한 한문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이 남다른 점은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자의식과 연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부여노정기>나 <금행일기>를 쓴 여성들도 여행을 일대의 큰 기회로 여기고 기대하고 즐거워했지만, 여행을 스스로 기획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의유당이나 김금원은 적극적으로 여행을 추진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차이를 드러낸다.

의유당은 함흥판관을 지낸 신대손의 부인으로 여행을 몹시 좋아했던 것 같다. 의유당은 1769년(영조45년) 서울을 떠나 함흥에 도착하자마자 만세교, 낙민루를 구경하고, 2년 뒤인 1771년에는 북산루와 서문루를 둘러보았다. 1772년에는 남편과 함께 동명 일출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 해돋이 구경은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의유당은 1769년 함흥에 도착해서부터 ‘해돋이와 달맞이가 봄 직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관아에서 50리나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듣고 심란해 했는데 기생들이 ‘못내 칭찬하며 거룩하다’고 하자 너무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이 들썩여’ 청하니 남편은 “여자의 출입을 어찌 가벼이 하리오”라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771년 ‘마음이 다시 들썩여’ 하도 간절히 청하니 남편이 허락하고 함께 동명으로 가게 되었지만 해돋이를 보지는 못했다. 1772년 다시 보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자 ‘인생이 기하(幾何)오? 사람이 한 번 돌아가면 다시 오는 일이 없고, 마음의 근심과 지극한 슬픔을 쌓아 울울하니, 한번 놀아 마음의 우울을 푸는 것이 만금과도 바꾸지 못할 것이니 가십시다.’라고 빌어서 드디어 해돋이를 보러 가게 된 것이었다. 의유당은 남편에게 빌었다고 쓸 정도로 간절히 가기를 원했다. 의유당은 남편이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간청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글이 <동명일기>로 특히 해돋이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한글 산문 가운데서도 빼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동명일기> 전에 쓴 <낙민루>와 <북산루>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글들이다. 이 글들은 정자나 누각 같은 건축물을 둘러보고 쓴 글로 누정기의 형식과 유사하지만, 누정기가 보통 그 건축물이 지어진 유래나 역사, 건축물의 모양, 자연 경관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놀이와 자신의 기분을 서술의 중심에 놓고 있다. 다음은 그 한 대목으로 종일 놀고 돌아와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문득 방금 전까지 눈 앞에 펼쳐지던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올 때의 기분을 생생하고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든 기생을 쌍지어 대무하게 하여 종일 놀고, 날이 어두워 돌아오는데, 풍류를 가마 앞에 길게 연주하게 하고 청사초롱 수십 쌍을, 고이 입은 기생이 쌍쌍이 들고 섰으며 횃불을 관청 하인이 수없이 들고나니 가마 속 밝기가 낮 같으니 바깥 광경이 터럭을 셀 정도더라. 붉은 비단에 푸른 비단을 이어 초롱을 만들어 그림자가 아롱지니 그런 장관이 없더라. 군문대장이 비록 밤 행차에 비단초롱을 켠들 어찌 이토록 장하리오? 군악은 귀를 진동시키고 초롱 빛은 조요하니 마음에 규중소여자임을 아주 잊고 허리에 다섯 인이 달리고 몸이 문무를 겸전한 장상으로 세운 공이 높아서 어디서 군대 공을 이루고 승전곡을 연주하며 태평궁궐을 향하는 듯, 좌우 불빛과 군악이 내 호기를 돕는 듯, 몸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중에 앉아 대로를 달리는 듯 뛸 듯이 기뻐하여 오다가 관문에 이르러 관아 안의 마루 아래 가마를 놓고 장한 초롱이 뭇별이 양기(陽氣)를 맞아 떨어진 듯 없어지니, 심신이 황홀하여 몸이 절로 대청에 올라 머리를 만져보니 구름머리 꿴 것이 고아 있고 허리를 만지니 치마를 둘렀으니 황연히 이 몸이 여자임을 깨달아 방안에 들어오니 바느질하고 베 짜던 것이 좌우에 놓였으니 박장하여 웃다.(<북산루>)

불 환히 밝히고 풍류 앞세우고 돌아오는 길. 여자임을 잊을 정도로 호기롭고 기분이 좋았으나 집에 들어서자 별이 떨어진 듯 장한 불빛은 사라졌다. 흥이 다하고 난 뒤의 비감(悲感). 그런 기분으로 나갈 법도 한데 여자임을 깨달은 그녀는 방안에 들어가 바느질하고 베 짜던 것을 보고는 손뼉을 치며 웃는다. 반전이다. 한껏 고양된 기분에서 갑자기 불이 나간 듯한 느낌으로 분위기는 급전직하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 마디 비탄도, 쓸쓸함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웃음소리에서 얻어맞듯 여자라는 존재의 위치를 본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