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가 정착되면서 조선사회의 여성들은 나들이나 여행이 자유롭지 않게 되었지만 당당하게 집을 나설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양반여성의 경우, 남편이나 아들이 지방 관아로 부임하게 되어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방에 부임하는 관리가 가족을 동반할 수 있게 된 18세기 중엽 이후나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명일기>도 작가인 의령 남씨가 남편의 부임지로 따라가서 함께 유람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 외 몇 편 남아있지 않은 기행가사도 아들이나 시숙이 부임한 관아로 가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들이다. <부여노정기>, <금행일기>는 양반여성이 여행길에 올라 다른 지방으로 가서 낯선 문화를 경험한 것을 그린 가사로, 여성의 눈에 비친 산수나 관아의 풍경,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여노정기>는 작자인 연안 이씨(1737~1815)의 아들이 부여현감으로 부임한 뒤 남편과 함께 부여까지 동행하고, 남편의 회갑연을 연 것을 기록한 것이고, <금행일기>는 작자인 은진 송씨(1803~1860)의 시숙이 지금의 공주인 금영 관리로 부임하고 나서 공주 관아를 다녀와서 지은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양반여성이라는 체면을 의식하면서도 여행에 대한 기대, 집 밖을 나온 해방감, 구경 욕심, 아쉬움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어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양반여성들의 기분과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아들의 부임 소식을 듣고 안동을 출발한 연안 이씨는 “주렴을 잠깐 들고 멀리 바라보니, 산천도 수려하고 지세도 트여있다, 사십 년 막힌 가슴이 이제야 트이도다.”라고 규방 밖을 나온 감격을 노래하고 “아해야 술 부어라 취토록 마시리라.” 하면서 한껏 기분을 낸다.

두 작품 모두 경사스런 일을 계기로 하는 여행이지만 여성으로서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은진 송씨는 정월에 금영에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여편네 관아 출입이 정초에는 긴요하지 않다’고 해서 삼월로 물려야 했고, 금영에 도착한 뒤 금강에서 선유(船遊:뱃놀이)를 즐기고 금강변에서 펼쳐지는 놀이에도 참여했지만 대낮에 하지 못하고 달밤으로 미루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보고 싶은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구차함을 무릅쓰기도 해서 재미있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은진 송씨는 관아에서 기생들을 점고하는 모습을 몹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양반부인 체면에 대놓고 나서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측간과 마구간이 있는 곳에서 악취를 맡으며 숨어서 엿보았는데, 스스로 그것이 구차하기 짝이 없다고 하면서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중문 밖 나서며 구경처는 지척이요 행랑은 거기서 머니, 다 각각 틈을 얻어 몸을 숨기고 엿보니 구차도 막심하다. 좌편은 책실 측간, 앞으로 마구간 격벽, 악취가 밀고 들어오나 구경 욕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하니……’

구경 욕심. 아마 이것은 집안에 있던 여성들이 여행에 대해 가졌던 일차적인 기대요, 욕심이었을 것이다. 은진 송씨는 강가로 놀러가서 쌍계사 가깝고 총벽암, 금벽정도 가깝다고 하면서 이곳들을 보고 싶은 구경 욕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곧 “여편네 이 구경도 꿈인가 의심하니 이 밖을 더 바랄까”라고 하며 보는 것이나 자세히 보아서 일기로 기록하였다가 부모님께 보이리라 마음먹는다. 그 일기가 바로 <금행일기>이다.

연안 이씨나 은진 송씨의 여행은 일종의 가족여행의 성격을 갖는다. 여성 혼자 떠나거나, 혹은 여성의 자발적인 원에 의해 이루어진 여행이 아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이들의 기대나 들뜸을 보면 구경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이들의 여행은 특별한 기회였음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역시 계급문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양반신분으로, 지방 관료의 가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혜를 이들 여성들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기행가사들은 깊고 깊은 규방 안에 매여 있던 여성들이 일상을 벗어나 외부세계를 구경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한편, 외부세계와 접하면서 자신이 규중의 여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은진 송씨가 ‘만일 남아였다면 팔도강산을 두루 놀고, 부모에도 효도하고, 출세해서 부모도 빛냈을 텐데 전생의 죄가 중해서 규방에 매인 몸이 되어 일마다 원하던 것과 다르다’고 한 것도 여행을 할수록 갇힌 몸을 더 의식하게 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여행은 외부세계를 향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향해 떠나는 길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여행에 매력을 느끼고 여행을 떠나고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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