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출판부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여기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철학 책이라는데 슬쩍 들춰보니 페이지도 만만치 않다. 이런!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물론 읽을 수 있다’이다. 지금 이 책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는 여러분의 모습은 처음 담당 편집자로서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자칫 고루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 속에서 과연 무지한 내가 이 책을 무사히 출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내 안심으로, 어느덧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굵직한 사상가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생각을 통해 20세기 한국철학을 짚어낸다. 최제우, 최시형, 이돈화, 김기전, 나철, 이기, 서일, 신채호, 이회영, 박은식, 전병훈, 박종홍, 함석헌, 신남철, 박치우…… 어쩌면 지금껏 서양철학을 중심으로 배워온 우리에게는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더 많을 수 있지만 크게 상관없다. 국내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당대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고, 민족과 인류애에 헌신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그들의 삶은 웬만한 역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근현대 철학자들이 생과 시대에 대해 보여준 진정성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지금껏 한국철학사라고 하면 19세기 말까지의 한국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이후의 철학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인 철학과 이규성 교수는 갖은 고난 속에 형성되어온 우리 고유의 사상이 정작 한국현대철학사에서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저자는 당대 철학자들의 사상이야말로 역사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해온 사유와 실천의 소산임을 참신한 관점을 통해 풀어냈다. 한국현대철학의 커다란 줄기와 함께 고유의 특성과 그 특성을 빚어낸 시대적·사상적 배경까지 꼼꼼하게 짚어내는 이 책에는 한국철학이 온전히 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자각과 창조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랜 세월 망각되어왔던 한국철학사 근현대 100여 년의 커다란 공백을 메우는 이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시대의 아픔 속에 깨어 있던 당대 철학자들의 삶 못지않게, 꾸준한 관심과 집념으로 이 한 권의 책을 완성시킨 저자의 모습에서도 감동을 느끼게 된다. 한 철학자의 열정과 혜안이 응집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한국현대철학사를 관통하는 경험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색다르고 뿌듯한 독서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자, 이제 겁먹지 말고 다시 책과 마주해보길! 지금껏 철학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더라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명 철학에 대한 인상이 바뀔 것이다. 바로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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