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국제법학회 총회에서 국 최초로 학부생 남매가 논문 발표…여동생 김후형 씨를 만나다


8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제75회 국제법협회(ILA) 총회에서는 ILA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 발생했다. 학부생이 처음으로 세계적인 석학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친오빠와 국제인도법 관련 논문을 준비한 본교생 김후영(영문·11)씨다.

김씨는 ILA 총회에서 ‘WHOSE DUTY TO OVERCOME’이란 제목으로 탈북자의 인권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국제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해주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작년에 참여한 ‘국제 인도법 세미나’에서 난민지위 인정 판결, 탈북자 강제송환 등에 관한 강연을 들으면서 탈북자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탈북자에 관한 자신의 관심을 보다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논문을 작성하게 됐다.

“올해 초, 중국의 북한 탈북자 강제송환을 바라보며 탈북자 문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탈북자들은 난민으로서 대우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이들은 다시 북한으로 추방되거나 강제 송환될 시 북한형법에 의해 고문은 물론 사형까지 당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런 부분에 관심을 두면서 탈북자 문제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게 됐죠.”

이 논문을 통해 김씨는 국제협약을 근거로 들어 탈북자의 필수 경유지인 중국이 탈북 난민을 강제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받게 되는 고통은 국제난민협약과 국제고문방지협약에 위배되는 것들이 많아요. 더욱이 이들은 ‘난민의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난민을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안 된다’는 난민불송환원칙(Principle of Non-Refoulment)으로도 보호 받지 못하고 있어요. 누구보다 법에 의해 보호되어야할 이들이 전혀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탈북자 문제에 가장 안타까운 점이죠.”

김씨는 법학 교수인 아버지를 통해 이번 ILA 학회에서 젊은 학자들을 위한 포스터 섹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탈북자 문제에 대해 영향력 있는 발표를 하고자  ILA 학회 참가를 결정했다. 포스터 섹션은 일반적으로 포스터를 이용해 논문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를 뜻하지만, ILA 학회는 몇 년 전부터 젊은 학자들의 발표 기회와 참여를 늘리기 위해 ‘포스터의 내용을 직접 발표하는 자리’로 활용하고 있다.

“난민의 지위 문제는 단순히 국내, 혹은 북한과 남한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미국, EU 등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에요. 탈북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그들의 인권 보호을 위해 국제사회가 모두 노력해야함을 호소하는데 에는 국제학회, 그것도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법학자와 법률가들이 모인,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ILA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ILA 총회에 김씨가 참가하기까지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실 이번 총회의 ‘젊은 학자들을 위한 포스터 섹션’은 원래 대학원생 이상의 참여만 가능하다. 하지만 김씨는 법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총회에 끈질긴 연락을 하고 담당자를 설득해 총회에 참가하게 됐다.

참가를 겨우 허락 받자 이번에는 논문 준비 과정에서 일이 꼬였다.

“참가 전 논문 준비 과정에서 탈북자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보다 외국에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와 관계된 일임에도 우리나라 연구가 부족한 점이 굉장히 아이러니 했어요. 또 외국 연구가 많았던 것 때문에 자료 분석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죠. 저희의 발표 내용을 담은 포스터가 예정일보다 늦게 제작돼 출국을 몇 시간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포스터를 받았던 것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죠.”

학회 당일은 물론 며칠 전부터 세계적인 석학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김씨는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발표 후 세계적인 석학, 전문가들이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그의 발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긴장도 풀어지고 마음이 놓였다.

“크메르 루즈 전범 재판소의 재판관이 저희 발표를 통해 탈북자의 인권문제에 대해 더 많은 나라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세계의 석학 앞에서, 그것도 학부생으로써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매우 영광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죠.”

인문학도인 김씨가 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학회에서 발표를 하기까지 법학과 교수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씨는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 부터 자연스럽게 법 관련 문제에 호기심을 갖고 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경험이 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 바탕이 됐다.

“훌륭한 법조인은 먼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은 제가 영문학과와 스크랜튼 학부를 동시에 공부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죠. 인문학적 소양을 키움과 동시에 법학 분야 과목을 수강하며 사회과학적 소양도 함께 발전시켜나가고 있어요.”

김씨는 ILA 학회에서 발표를 한 것 뿐 아니라 인턴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국제사회에서 소수자 인권문제에 일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를 바탕으로, 인도법과 관련한 국제분쟁현장의 협상전문가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지금의 경험은 모두 꿈에 한발씩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국제사회에서 소수의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국제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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