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주민 출신 첫 컴퓨터 강사 허서진 씨 인터뷰
탈북 주민 출신 첫 컴퓨터 강사 허서진 씨 인터뷰
  • 박예진 기자
  • 승인 2012.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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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남한에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어요”
▲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저는 이화에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남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요.”

허서진(북한학협동과정 박사과정)씨는 본교에 재학 중인 탈북 학생이다. 그는 남한에 와서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현재 탈북주민 출신으로는 최초의 ‘한국정보화진흥원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허씨는 북한에서 청진 고등 경제 전문대학을 졸업한 인재였다. 그는 북한의 무역회사에서 회계와 재정총괄 관리 업무를 했다. 2001년 탈북한 후 남한에서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남한에서 직업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주판을 이용해 회계 업무를 했어요. 하지만 남한은 사용하는 단위가 커서 회사에서 주판을 쓰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더 이상 주판을 사용하지 않더군요.”

남한에서 생활 하면서 허씨는 컴퓨터를 배우지 않고서는 직업을 구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활용 방법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2002년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새터민 교육’에 참가했다.

“북한에서는 아무나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더구나 북한에서 배운 컴퓨터 공부는 이론이 전부에요. 한 번도 컴퓨터를 만져본 적도, 본 적도 없었죠. 남한에 와서 컴퓨터를 직접 사용해보니 북한에서 배운 이론도 하나씩 생각나며 이해가 더 잘 됐어요.”

북한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덕분에 컴퓨터 이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허씨는 1년 동안 컴퓨터 활용능력, 인터넷 정보 검색사, 전산세무 2급, 전산회계 1급 등 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컴퓨터 활용능력 1급 자격증을 딴 사람은 새터민 교육을 함께 듣던 탈북주민 중 60명 중 허씨가 유일했다.

“저는 북한에서 회계를 배웠기 때문에 컴퓨터에 관한 이론을 알았어요. 그 덕분에 다른 분들보다 자격증을 따는데 유리했던 것 같아요.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컴퓨터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탈북주민 중에는 컴퓨터에 관한 이론을 배운 사람도 드물고 심지어 컴퓨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허다해요.”

탈북주민이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컴퓨터 책 속에 등장하는 영어 단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탈북주민들은 여러 가지 컴퓨터 자격증을 딴 허씨에게 컴퓨터와 관련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허씨는 그들에게 영어 단어를 북한 용어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단위가 커서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는 작은 단위로 바꿔 설명해줬다. 차츰 허씨에게 컴퓨터를 물어보는 탈북주민이 많아지자,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아예 허씨에게 ‘컴퓨터 강사’로 나서달라고 제안했다.

2003년 탈북주민 출신으로는 첫 컴퓨터 강사가 된 허씨는 시중에 쓰이고 있는 컴퓨터 교재부터 탈북주민의 눈높이에 맞게 다시 만들었다. 교재 속의 영어 단어는 북한용어사전을 이용해 최대한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로 바꿨다. 또한 허씨는 취업에 유리하거나 일상 생활에 유용한 자격증을 위주로 교육을 진행했다.

탈북주민 출신인 허씨가 직접 탈북주민을 위한 컴퓨터 강의를 맡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전산 회계, 전산 세무 등 전문 자격증을 딴 제자들이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 대신 회계사 사무실, 세무사 사무실 등에 취직하기 시작했다.

“10년간 약 2천5백 명이 넘는 제자를 가르쳤어요. 그 중 많은 학생들이 ‘사무직’에 취직했어요. 남한 사회에서 탈북주민이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대우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달라져요. 제자들이 취직에 성공하고 제게 하는 말 중 ‘선생님, 저도 사무실에서 따뜻하게 앉아서 일해요’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아요.”

그러나 얼마 전, 이 교육이 중단될 뻔 했다. 허씨가 강사로 활동하던 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대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허씨는 본교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대구로 일자리를 옮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자비를 털어 5월에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탈북주민들을 위한 첫 컴퓨터학원을 열었다. 이곳은 컴퓨터 교육뿐 아니라 탈북주민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허씨는 ‘탈북주민 교육’ 문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통일’에 대해 보다 실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본교 북한학협동과정에 다니고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을 위해 공부를 했던 이전과 달리 처음으로 다른 탈북주민을 위해 공부하고자 본교에 진학했다.

“탈북주민을 교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통일’에 대해 보다 사회적, 학문적으로 깊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어요. 그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문화적인 교육 등을 해야 하는데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제가 남한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탈북주민은 겪지 않도록 제가 더 노력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