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언론10)

 

“지영, 내가 진짜 고민되는 건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야.”

며칠 전 친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휴대폰 너머로 친구는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어지는 친구의 말에 내 심장도 쿵, 내려앉았다.

“그러니깐 난 지금 그냥 대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만 있는 것 같아.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는 열망은 꺼진지 오래야.”

장장 40여분에 걸친 통화를 끝낸 후, 엉켜버린 생각의 실타래로 머릿속은 복잡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이 두 어구를 새삼스레 노트에 적어봤다. 한동안 뚫어져라 두 어구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답을 내렸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은 두 어구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풀릴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대학생’이다. ‘學生.’ 배울 ‘학’자에 ‘날 생’자. 글자 그대로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학생’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더욱 폭넓고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또는 남이 부러워할 직장을 갖기 위해서,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딱히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저 우린 각자가 꿈꿔왔던 소중한 꽃밭에 살포시 발을 내딛기 위해서 오늘도 밀려오는 졸음을 꾹 참을 뿐이다. 꿈꾸고 있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목전에 놓인 할 일을 ‘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자석의 N극과 N극처럼 진정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어구인지 말이다.

운 좋게도 난 꽤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역설적이게도 ‘해야 하는 일’을 하던 도중, 그 꿈을 꾸게 됐다. 그 둘의 연관관계를 말하기 위해선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3학년 개학날, 한 선생님께서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풍기시며 교실 앞문을 드르륵 여셨다. 그러시곤 “오늘부로 너희의 담임선생님이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한마디에서조차도 어찌나 강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는지…. 그 선생님께선 참 특이한 방식으로 1년간 우리들을 가르치셨다. 우린 매일 아침, 칠판에 적혀 있는 시를 다 같이 낭송하고 암송해야만 했다. 그 일은 10살인 우리가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어린 아이 입장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시를 암송해야 하는 일이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한 학기가 지날수록 점점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일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어들도 자연스레 입에 붙었다. 곧 ‘하고 싶은 일’이 내면에서 꿈틀꿈틀 피어올랐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이 그때부터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까지 내 인생의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저 멀리 떨어진 유토피아에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꿈을 찾을 수 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로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N극과 S극처럼 딱! 붙는, 그 기막힌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길 바란다. 덤으로 짜릿한 전율도 함께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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