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의 가해자라면
내가 누군가의 가해자라면
  • 이채강 기자
  • 승인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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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강 편집국장

 

* 이 칼럼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한 잡지에서 ‘키가 커서 미안합니다’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키가 큰 이 칼럼니스트는 자신보다 키 큰 사람 뒤에서 공연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앞사람의 큰 키에 가려진 무대를 보기 위해 공연 시간 내내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젖혀야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뒤에 앉았었던 관객도 고개가 아프고,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지 되돌아봤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습관 때문에 상대방에게 당황스러움 혹은 불쾌감을 줬던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이 세찬 겨울에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길을 걷다가 전단지를 내민 아르바이트생의 손을 무심코 지나쳐 그를 무안하게 했던 적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불쾌감, 무안함을 느꼈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암에 걸린 부인을 위해 남편(A)는 사채를 쓴다. 사채업자(B)의 빚 독촉에 시달려온 남편(A)는 뺑소니 사고를 신고하겠다며 가해자인 택시기사(C)를 협박한다. 가난한 택시기사(C)는 돈을 입금하기 위해 사채업자(B)의 부인을 납치, 금품을 갈취한다. (B)는 (A)의, (A)는 (C)의, (C)는 (B)의 가해자가 된다는 말인데,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에게 주는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특정한 결과를 의도치 않은 행위’가 나비의 날개 짓이 폭풍우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와 결합되면 무시무시한 악행위가 될 수도 있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8억 5천만 명(2005년 기준)이 기아 상태에 있다. 

기아 문제는 자연 재해, 자본주의 속성에 따른 국가 간 이해관계, 내전 등 무수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는 난민에게서 경작할 수 있는 땅과 마실 물까지 빼앗고 있다. 온실가스를 만들어낸다는 화장품 사용, 사육 과정에서 수천 톤의 메탄을 발생시킨다는 육류를 섭취, 이외에도 일회용품 사용, 과도한 냉‧난방까지. 우리의 일상 속 행동 하나하나가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팔, 다리를 마르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지구 한 편에서는 곡식이 남아돌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다른 한 편에는 영양실조로 인해 시력을 잃는 난민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이지만, 케냐에서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에이즈로 고통 받고 있다. 남편이 죽은 미망인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어 달라붙은 영혼을 몰아내야 한다는 관습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의도치 않은 행위’ 그리고 철저한 무관심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며 매일을 산다.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내가 가장 손해를 많이 봤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누구를 가해자로, 누구를 피해자로 규정지을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면, 다른 한 편으로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매 순간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영화배우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였던 오드리 햅번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