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훨훨 나는 꿈을 꾸다

▲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이화나비. 나비가 훨훨 날아가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위안부) 피해자들과 모든 여성이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돼 ‘날개짓’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동아리다. 10월30일, 학생문화관 1층 소극장에서 나비기금(전쟁 피해 여성을 위한 지원기금) 마련을 위해 ‘이화나비 콘서트’를 개최한 이화나비 봉우리 대표(무용․10)를 만났다.

봉우리 대표는 후배의 권유로 ‘일본군 위안부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수요집회)’에 참가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화나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올해 8월에 수요집회에 참여했을 때 수요집회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저에게 처음인 집회가 벌써 1천회가 넘은 집회라는 사실에 놀랐죠. 이후 몇 번을 더 참가했는데 집회 내내 할머니들이 웃으시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힘든 몸으로 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시는 할머니들이 웃을 수 있게 해드리자는 생각에 이화나비를 만들게 됐어요.”

9월 초, 봉 대표는 이화나비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학교 곳곳에 이화나비 가입방법, 소개 등이 적힌 홍보지 300장을 붙였다. 그 결과 본교생 14명이 모였다. 

‘이화나비가 되려면 수요집회에 참여해야 한다’, ‘서명 운동을 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적힌 모집 공고를 학교 곳곳에 붙였어요. 이후 가입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왔죠. 처음에는 체계가 있는 동아리가 아닌 모임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학생들의 꾸준한 참여를 위해서는 결속력을 느끼게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동아리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봉 대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문 지식 부족으로 홍보지 제작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수요집회에 참여한 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나비를 시작했지만 관련 지식이 부족해 여러 번 실수했어요. 이화나비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 날 아침에 수요시위를 다룬 책인「20년간의 수요일」을 읽는 도중, ‘정신대’가 잘못 쓰이고 있는 용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정신대는 ‘자의(自意)’가 포함된 말이므로 강제로 징집된 일본군 위안부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복사한 300장의 포스터를 다 버리고 전부 새로 복사 했어요.”

콘서트를 위해 공연 한 달 전부터 콘서트 초안을 짜고 스태프 모두가 한 달 동안 사회자 섭외를 시도하는 등의 준비를 했다. 콘서트 2주 전부터는 시험기간과 겹쳐 시간이 촉박해 매일 아침에 운영위원회 회의를 진행해 경과를 보고했다. 

“섭외부터 자금 조달, 홍보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죠. 콘서트를 위해 별도로 모집한 22명의 콘서트 스태프가 콘서트의 사회자, 공연 단체 섭외를 위해 한 달 동안 전화,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매달렸어요. 다행히 음향업체에서 음향장비를 지원해주시고, 정대협에서 공연 가수를 소개시켜주는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봉 대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화인의 관심을 부탁했다.

“최초의 수요집회에는 236분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참여하셨어요. 이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60분의 할머니만 집회에 참여하세요. 단 한 분의 할머니라도 더 살아계실 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20년 동안 할머니들의 외로움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끝맺음을 맺을 수 있도록 이화인들이 마지막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