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ghai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나는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중어중문학과 학생이라면 직접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남들은 이것저것 비교해가면서 어느 학교가 좋을지 조사해봤을테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큰 도시에 있는 상해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상해에 도착한 나의 첫 타지생활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상해의 매력에 빠지는 나를 발견했다. 중국어 회화 책에서 상해를 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명소가 동방명주다. 처음 동방명주를 봤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룸메이트의 친구가 상해로 놀러와 함께 관광을 다녔다. 상해에 뭐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때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룸메이트를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지하철역에서 내린 순간 내 눈 앞에 동방명주가 떡 하니 나타났다. 그 날 동방명주를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 분홍색 타워의 웅장함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게다가 밤에는 어찌나 아름답던지 동방명주뿐만 아니라 그 앞의 빈장대로(滨江大道)에서 바라보는 와이탄의 야경은 너무나 황홀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상해를 사랑하게 됐다.

학교는 일반 중국학생이 사용하는 본과 캠퍼스와 유학생이 수업을 듣는 유학생 캠퍼스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교환학생인 우리는 본과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등록을 하면 반 배치고사를 보고 그에 따라 반이 나뉘는데 낮은 반으로 갈수록 서양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높은 반으로 갈수록 동양인,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다. 나는 중급 2반이었는데 한국인 6명, 일본인 6명, 나머지는 화교,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독일인, 우즈베키스탄인 등이었다. 내 짝은 독일인 메이크(Meike)와 러시아인 아지자(Aziza)였는데 둘 다 영어와 중국어가 능숙한 친구들이었다. 회화수업시간에 짝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주로 듣고 둘이 대화를 했다.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담임선생님이었던 왕 선생님은 우리에게 선생님을 ‘중국 엄마’라고 생각하라며 항상 잘 해주셨고, 친구들도 친절했다. 특히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학교 밖까지 나가서 지엔빙(煎饼)을 사 먹고 돌아오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기숙사에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곤 했다. 4월에는 학교에서 다 같이 봄 소풍으로 중국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주장(周庄)에도 갔다.

상해외대에는 세 개의 기숙사가 있다. 내가 갔을 당시에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인 영빈관(迎宾馆)이 내부 공사 중이어서 학교에서 가장 멀고 작고 오래된 기숙사, 전가루(专家楼)로 배정됐다. 고작 4층 밖에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도 없었지만(수업 듣는 건물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작아서 좋은 점이 있었다면 기숙사 친구들끼리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숙사 친구들과 다 같이 만나게 되었던 건 화재 사건 때문이었다.

3월의 어느 수요일 낮, 방에서 친구 머리를 드라이 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한 냄새가 나서 고데기에 문제가 생겼나 하고 킁킁거리던 찰나에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불이야!!” 우리는 놀라서 기숙사 밖으로 뛰어 나갔고, 기숙사를 보니 2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2층을 쓰던 일본인이 텔레비전 위에 아로마 향초를 켜놓고 잊어버린 채 다른 친구 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향초가 넘어지면서 텔레비전에 불이 붙게 된 것이었다. 텔레비전에만 불이 붙은 것이어서 화재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지만 연기가 너무 심해서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상해에서의 매일매일이 항상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상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이고 좋은 추억들로만 가득한 도시이다. 언제나 그립고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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