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플레이걸스, 야구 방망이 든 여자들의 이야기

매주 토요일 오전8시 본교 운동장. 한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글러브를 낀 여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복장은 제각각이지만 야구 방망이를 든 이들의 모습은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게 진지하다. 이들은 야구를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야구를 하는 동아리 ‘이화 플레이걸스(Ewha Playgirls)’ 회원들이다. 42명의 이화 플레이걸스(플레이걸스)를 이끌고 있는 대표 이명진(정외·09)씨를 만났다.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던 이 씨는 단골 카페 사장님과 야구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7월21일 플레이걸스를 결성하게 됐다.

“사장님이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계셔서 함께 야구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학교에 동아리를 만들어 실제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사장님이 흔쾌히 감독을 자청하셨어요. 장비도 지원해 주시겠다고 해서 수월하게 야구단을 결성하게 됐죠. 그 후 바로 우리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인 이화이언을 통해 야구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회원을 찾아 나섰어요. 처음에는 약 10명의 인원이 모여 야구단을 창단했죠.”

플레이걸스라는 이름에는 야구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여대생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야구에 대한 여성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직접 경기를 하는(Paly)하는 여자들(Girls)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들은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직접 야구를 배우고 경기를 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에게 지지 않았지만, 회원 대부분은 첫 훈련 때 글러브와 야구 방망이를 처음 잡아봤다.

“공대생에서 음대생까지 다양한 학생으로 이루어진 플레이걸스 회원들은 매 프로 야구 경기를 챙겨보고 선수의 활동을 분석하는 이론 전문가예요. 하지만 실상은 날아오는 야구공도 무서워하는 초보였던 거죠. 저 또한 실제로 야구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부족한 실력과 체력 문제는 첫 훈련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첫 훈련 때 모든 회원은 준비운동으로 운동장 두 바퀴를 뛰고는 운동장에 드러누웠다.

“전부 여자로 구성됐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이 제일 문제였죠. 야구에서는 특히 하체 힘이 중요한데 기본 체력이 없는 상태에서 하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동작을 하려니 자세도 안 나오고 몸만 고됐어요. 첫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다들 너무 갑자기 운동을 해 몸에 안 아픈 곳이 없어 기어가다시피 했어요. 특히 야수(타자가 친 공을 받아서 수비하는 역할) 기본자세를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기본자세는 런지(Lunge, 다리 보폭을 넓게 벌린 후 양 쪽 무릎을 동시에 구부리되 땅에 무릎을 안 닿게 하는 동작)인데 자세를 취할 때 마다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렸죠.”

이들은 부족한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야구를 연습하며 팀원과 경기 호흡을 맞춰나갔다. 야구는 적어도 5명이 필요한 단체 경기이기 때문에 소위 야구를 ‘팀플이자 개인전’이라고 한다. 투수, 타자, 포수 등 각자의 개인적인 역량도 필요하지만 서로의 호흡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수, 타자 등 회원 모두 각자 자신이 욕심내는 포지션이 있어요. 그 포지션에 대한 회원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해요. 투수를 하고 싶어 하는 한 친구는 감독님에게 변화구, 직구 등 프로선수만 할 법한 다양한 투구법을 물어 개인적으로 연습해요. 또 포수는 경기의 흐름을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라서 야구 경기에서 ‘어머니’라고도 불리죠. 포수에게는 열정과 더불어 같은 자세로 오래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해요. 그래서 개인용 글러브를 따로 구매해 공을 받는 연습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이런 이들의 노력 덕분에 매주 한 번씩 진행되는 플레이걸스의 연습은 점차 체계적인 틀을 갖춰 가고 있다.

“스트레칭 같은 기본 운동으로 연습을 시작해요. 몸 풀기로 캐치볼(Catch Ball)을 한 후 기본적인 수비 자세부터 배팅 연습까지 수준별로 나눠 2~3시간 동안 연습해요. 감독님이 직접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해 주시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죠. 또 연습경기를 통해 다양한 포지션에 맞는 실전 연습도 하고 있어요.”

항상 야구 경기를 보고 경기 결과나 실력이 좋은 선수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지만 실제 야구 경기에 참여하고 나서부터는 경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는 경기 전체의 흐름을 보고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확인한다. 이씨는 경기를 자세히 관찰하면 선수의 순발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희끼리 팀을 나눠 자체 청백전 경기를 했어요. 생각만큼 경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머릿속은 이미 3루에 가있는데 실제로는 방망이에 공도 못 맞추고 있었거든요.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기성용 선수가 경기 후 자신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는 네티즌들에게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말을 했어요. 청백전을 끝내고서 기 선수 말에 공감했죠. 앞으로는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져도 절대 선수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

플레이걸스는 동아리 역사가 짧은 만큼 앞으로 꾸준한 연습 등을 통해 본교 중앙 동아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들은 창단한지 갓 두 달이 지난 신생 동아리로 아직 활동 내역이 적어 중앙 동아리로서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야구단의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이화를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유니폼도 제작 중이다.

“이제까지 남학생으로 이뤄진 야구단은 많았지만 여대생끼리 결성한 야구단은 저희가 처음이에요. 단기적인 목표는 저희 자체 청백전을 좀 더 수준 있게 운영 하는 것이에요. 저희의 최종 목표는 사회인 야구단 리그에 출전하는 것이에요. 졸업 후 지속적인 야구단 활동을 통해 학교를 대표하는 야구단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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