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과 영화 천녀유혼을 탄생시킨 송대 이후의 환상문학
손오공과 영화 천녀유혼을 탄생시킨 송대 이후의 환상문학
  • 인문과학원 정선경 HK교수
  • 승인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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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유교를 표방했던 송나라에서도 환상 이야기는 여전히 유행했다. 임금의 명령으로 편찬된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글머리부터 환상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이방(李昉)이라는 학자를 중심으로 여러 명이 공동으로 편찬한 총 500권이나 되는 서적이다. 중국의 선진시기부터 송초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의 야사ㆍ소설 등을 종류별로 편찬했다. 신선(神仙), 여선(女仙), 신(神), 귀(鬼) 등의 이야기가 다른 것에 비해서 많이 기록되어 있고, 더욱이 신선 이야기가 책의 맨 앞부터 시작된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삶과 죽음을 다루는 환상적 이야기들은 더욱 널리 유행하게 되어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연재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송대 최대의 필기소설집인 홍매洪邁의 『이견지(夷堅志)󰡕는 총 420권 중 현재 절반 정도가 전해지며 이전 시대 소설의 전통을 이어서 신비로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위진 시대 지괴(志怪)와는 다른 색깔의 환상적 이야기가 망라되어 있으며, 현실 속 괴담이 가득하다. 홍매는 어려서부터 견문이 넓고 박학다식했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이견지󰡕는 그가 말년에 소일거리로 지었는데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정리한 것이다. “패관이나 소설가의 말을 꼭 신뢰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홍매의 언급은 환상으로서 허구 문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내용은 상당히 광범위하여 민간 전설, 방언, 민속, 종교, 의약 등에 관한 이야기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도교적 신비감이 만연했던 원나라의 종교·사상적 분위기는 명나라 초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진실한 성정이 녹아든 문학작품이 높게 평가되면서 소설의 지위도 고양된다. 단편적으로 존재하던 환상적 이야기들이 일정한 체계성을 지니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들 수 있다. ‘전등(剪燈)’이란 등불의 심지가 다 타서 불이 가물거리고 희미해지면 심지를 잘라서 불빛을 다시 밝힌다는 뜻이고, ‘신화(新話)’란 그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다. 저자인 구우는 녹차의 산지로 유명한 지금의 강소성 항주 사람이었다.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우아한 문체와 부드러운 필법으로 󰡔전등신화󰡕를 지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등신화󰡕는 구어체의 백화소설이 흥기하던 당시에 고상한 문언체로 쓰여 졌는데 그 중 인간과 귀신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널리 유행했다. 모방작이 많이 나오면서 명, 청대 전기소설의 부흥을 이끌었고 나아가 한국,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의 전기소설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우리나라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영향을 준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서문에서 창작목적이 권선징악과 인도주의에 있다고 밝혔으나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기이한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전등신화󰡕를 포함해서 소설류에 대한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도시사회가 번영하고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오락적인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그만큼 대중소설은 급속하게 발전한다.

󰡔전등신화󰡕의 여파로 단편소설 뿐 아니라, 환상성이 농후한 장편 소설들도 유행하게 된다. 그 중 노신(魯迅)이 신마(神魔)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서유기(西遊記)』를 주목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서유기』는 당나라의 승려 현장이 인도에 불경을 가지러 간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익살스러운 손오공을 중심으로 신화와 도교 및 불교적 상상력을 총동원한 환상소설의 대표작품이다. 명말 청초의 문인 원우령(袁于令)은 『서유기』를 두고 “가장 허구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은 환상적인 것을 말함만 못하고, 부처를 말하는 것은 마귀를 말함만 못하다”고 함으로써 환상적인 이치가 지극히 참된 진리임을 강조했다. 명나라 말기에 소설의 가치가 고양되고 인쇄술이 더욱 발달하자 소설을 읽고 향유하는 계층이 많아졌고, 신비한 이야기가 유행하는 풍조는 청대 최고의 문언단편소설집인 『요재지이(聊齋志異)』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요재지이󰡕는 청대 포송령(蒲松齡)의 작품으로 내용은 대부분 신선과 동물의 정령 이야기들이며, 변형 및 재생의 모티프가 가득하다. 총 500권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묘사가 지극히 생동적이라서 변환하는 형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서문에 보면 “나는 간보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신기한 이야기의 수집을 좋아했고, 취미는 황주로 귀양 갔을 때의 소식(송대의 문인)과 비슷하여 남들이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퍽이나 즐겼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그 즉시 붓을 휘둘러 기록해 두곤 했는데 그것이 쌓이다 보니 마침내 이렇게 두꺼운 장편 대작이 되었다…설사 내 작품의 내용이 지극히 황당하더라도 한 군데나마 취할 곳이 있다면 없애버려서는 안될 것이다”고 했다. 딱딱한 형식의 팔고문(八股文: 명청시대 과거시험 문체 중 하나, 정해진 격식으로 글을 짓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도 제한하던 형식)이 유행하던 시기에 환상 문학의 가치를 인식했던 그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전해지던 여우나 귀신 등의 신비한 이야기들을 현실성이 풍부하면서 생동적이고 화려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지식인층에서도 상당히 유행했다. 아름다운 여주인공 덕분에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중국영화 <천녀유혼>의 모티프가 이 책에서 근원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