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 박물관 특별 기획전 12일부터 열려


박물관 특별 기획전 <미술, 식탁 위에 깃들다>와 <한국 상차림의 예와 멋>이 열렸다. ‘상차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현대까지 상차림에 담긴 시대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12일~12월8일 <미술, 식탁 위에 깃들다>는  박물관 2층의 근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상차림의 예와 멋>은 같은 층의 기획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오진경 관장은 “인류는 매일 반복되는 식생활에 아름다움과 기술을 덧입혀 다양한 식탁문화를 탄생시켰다”며 “시대적으로 변화해 온 상차림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술, 식탁 위에 깃들다>는 상차림을 소재로 한 다양한 현대 미술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시에는 이종구, 박영근 등 12명의 작가가 참여해 독창적인 기법과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식문화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한다. <한국 상차림의 예와 멋>은 시대와 신분을 가로질러 한국 식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총 3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전시는 ‘일상의 상차림과 의례상’, ‘상차림의 과정에 담긴 미감’, ‘왕실과 대통령 관저의 상차림’을 다룬다.

△소박함부터 탐욕까지, 밥상이 담은 현대인의 마음

<미술, 식탁 위에 깃들다>를 보기 위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근현대미술전시관 앞에 소박한 밥상, <식량2>가 놓여있다. 밥상 위에는 아크릴 물감으로 수저 2쌍, 김치, 화전 1개, 간장이 그려져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민중미술가로 활동한 이종구는 소박한 밥상을 통해 농부의 땀과 열정으로 일궈낸 음식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반찬 수도 적고 밥상도 작지만 그 작은 밥상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농부가 고되게 흘린 땀방울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소박한 밥상을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운데에 자리한 <맛있는 식사Ⅱ>에서 쇼핑 호스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소중한 국민 여러분들을 위해 … 굉장히 고가의 … 드릴거예요. 정말 고급스러움과 화려함과 다양함과 … 쾌적한 …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식탁 위에 설치된 둥글고 납작한 접시모양의 스피커 4개에서 다양한 남녀 쇼핑 호스트의 상품 광고가 주어와 목적어 없이 끊겨 나온다. 이는 현대인에게 존재하는 두 가지 욕구를 비교해 보여준다. 빈 접시처럼 보이는 스피커의 모양은 아무리 먹어도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식욕을 그린다. 그 속에서 나오는 광고는 식욕처럼 끊임없는 현대인의 소비욕을 보여준다.

전시실의 세 벽면에는 검은 배경의 상차림 그림이 걸려있다. 그 중에서도 오른쪽 벽면에 걸려있는 작품 <스틸라이프 시리즈 03>이 눈에 띈다. 17세기 황금시대상을 기반으로 금색 병, 반짝이는 유리병 등을 이용해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꾸며진 식탁이 그려진 정물화다. 식민지개척과 해양무역을 통해 지배국의 우월함, 물질적 풍요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드러난다.

왼쪽으로 보이는 <Eating Flower>는 꽃이 담긴 접시와 그 앞으로 접시만큼 큰 포크를 그린 작품이다. 커다란 포크가 마치 꽃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포크처럼 꽃을 취하려고 하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를 대변한다.

왼편의 문으로 들어가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주전자, 1인용 소파, 그 소파만한 컵이 1분 마다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는 영상이 보인다. 영상의 배경과 사물이 검은색, 회색 등의 무채색으로 표현됐고, 거울처럼 영상을 반사하는 450개의 타일들이 화면 아래의 바닥에 놓여 있어 전시실 전체에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이 작품의 맞은 편에는 검은 식탁이 있다. <관계 2011>에서 박선기 작가는 멀리서 보면 진짜 식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그만 숯들이 나일론 줄에 나열된 것일 뿐인 가짜 식탁을 통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벽면에는 각각 선명한 색의 레몬, 포도주, 사과 등을 담은 시리즈 그림 3점이 전시돼있다. 가운데 작품인 <덧없음의 알레고리(과일, 도자기포트)> 속 탐스런 음식들 옆에는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잔이 그려져 삶의 덧없음이 드러난다. <덧없음의 알레고리(초록와인병)>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작품 속 음식들이 기독교 도상(종교적 의미를 갖는 사물)으로부터 출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사과는 인간의 원죄를, 레몬은 성모마리아를 뜻한다.

△상 위에 올라온 당대의 문화

고려 시대부터 현대까지 왕·황제 및 역대 대통령들의 상차림은 당대의 문화를 반영한다. 고려 시대의 상차림으로는 <청자 찻상>이 전시돼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청자 주자, 완(입구가 넓은 잔), 잔 등이 놓인 찻상은 고려시대에 불교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선종불교에서 수행 중에 차를 마시는 것이 유입되면서부터 고려시대에 차 문화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차 문화는 더욱 성행해 사찰과 왕실에서 정신 수양을 하고, 불교 교단 행사를 할 때 진다의례(임금에게 차를 진상하는 의식)을 필수 항목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통도사 감로탱화>에 그려진 상차림에서는 조선시대의 불교 의식을 볼 수 있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극락에서 왕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담았다. 작품 속 재단 위에는 붉은 천으로 덮인 상 위에 향로와 촛대, 화려한 꽃과 오색진미가 담겨있다. 유교식 제사나 무속신앙의 제사와는 달리 채식 위주의 공양물로 가득 채워진 불교의식 상차림은 불교 제례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화려하고 크게 행해졌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근대의 유물은 서구의 식탁문화가 유입된 모습을 보여준다. 1936년 4월에 만들어진 <조선호텔 메뉴판>에는 노란 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에 영어로 쓰여진 메뉴 ‘Vanilla Ice Cream’, ‘Apple Pie’ 등을 통해 당시 서구의 음식이 우리의 식탁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실과 대통령 관저의 상차림은 단순히 음식문화를 향유하는 차원을 넘어 시대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한제국 황실 양식기>는 하얀 식기에 새겨진 오얏꽃 무늬가 인상적이다. 서양의 음식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대한제국 황실은 양식기를 유럽과 일본에서 주문제작하며 식기에 황실의 상징 문장인 오얏꽃무늬를 새겼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원으로부터 듣는 관람 팁

그가 <상차림의 미학>을 추천하는 이유는 유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릇이나 주전자 등 개별 작품 하나하나를 전시한다기보다 상차림이라는 주제에 맞는 유물들을 한데 모아 찻상, 주안상, 제례상 등 다양한 형태의 상들을 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상차림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들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학예연구원은 전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 입구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브로셔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의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한 도슨트가 각 전시실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입구 로비에는 전시관련 브로셔가 비치되어 있고요. 또 10명 이상의 단체 관람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1주일 전에 예약을 하시면 도슨트로부터 영문 설명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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