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쇼를 위한 90일 간의 여정
단 한 번의 쇼를 위한 90일 간의 여정
  • 박예진 기자
  • 승인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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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패션연합 정기 패션쇼…디자인부터 기획까지 모두 학생 손으로

1996년 패션에 관심 있는 학생 약 10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한 한국대학생패션연합(O.F.F, Off the Fixed idea of Fashion)의 16번째 정기 패션쇼 ‘C'est la vie’가 1일 디큐브시티 야외광장에서 열렸다.

패션쇼는 C'est la vie(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큰 주제 아래에 세 가지 소주제를 갖고 진행됐다. 첫 번째 무대는 ‘만남’, 두 번째는 ‘사랑’ 그리고 마지막은 ‘이별’이 주제였다. 이번 패션쇼에는 On Style의 차세대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TV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 출연진을 비롯해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참석했다. O.F.F 학생들이 4개월 동안 준비한 패션쇼에는 김서현(광고홍보·11)씨가 기획팀장으로, 한지윤(의류·10)씨가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올해 여름을 패션쇼 준비에 여념 없었던 이들을 패션쇼 현장을 방문해 만나 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패션쇼를 준비하기까지

이번 패션쇼에서 작품과 디자이너들을 빛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 노력한 이들이 있다. 바로 O.F.F 기획팀이다. 김서현씨는 기획팀장으로서 4개월 간 패션쇼 기획과 홍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올해 5월부터 김씨를 포함한 팀원들은 직접 패션쇼의 주제와 취지가 담긴 제안서를 준비했다. 패션 관련 회사에 찾아가 자금과 신발, 악세사리 등의 협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김 씨는 기획팀장으로서 일일이 회사 담당자들 앞에서 후원을 받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비영리단체인 저희 패션쇼가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준비해 간 제안서와 자료를 읽어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업체들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대학생의 문화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업체 위주로 찾아다니며 후원을 부탁드렸죠. 그 결과 corcs 등 7개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패션쇼가 열린 디큐브시티도 대학생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곳이란 말을 듣고 제가 직접 찾아가 장소 협찬을 받았어요.”

이들이 협찬으로만 예산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6월 상상 Univ.에서 주최한 ‘드림(Dream) 프로젝트 - 나, 너, 우리/우리가 사는 세상(대학생이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획안을 출품하는 공모전)’에 출품한 패션쇼 프로젝트가 1등으로 선정돼 받은 상금 500만원도 예산에 쓰였다. 김씨는 제안서에 패션쇼가 O.F.F에 기여하는 바와 이를 통해 얻은 것을 사회에 되갚는 방법을 녹여냈다.

“공모전에서 우리의 꿈인 패션쇼를 성공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에 ‘패션’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후원에 대한 보답으로 복지센터 아이들에게 티셔츠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죠.”

팀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시작된 패션쇼인 만큼 김씨는 다른 패션쇼와의 차별성을 두고자 무대 구성에 톡톡 튀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Off the Fixed idea of Fashion’의 약자인 O.F.F는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는 뜻이다. 이 뜻은 패션쇼 무대 배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의미로 사용됐다.

“O.F.F는 일반적인 패션쇼 무대라 할 수 있는 ‘T’자형 무대를 깨고 ‘ㅁ’형 무대와 계단식 관객석을 기획했죠. 새로운 무대 구조에 관객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관객석이 단층이어서 뒷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이전 무대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죠. 또 표현공간이 더욱 넓어져 런웨이에서 모델이 다양한 동선을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패션 비전공자 임에도 김씨는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올해 초부터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 패션쇼에서 전반적인 기획을 총괄하며 힘든 점도 많이 겪었지만 항상 꿈 꿔 온 패션쇼 기획, 홍보 일을 직접 해 볼 수 있어서 보람찼다고 말했다.

“책상 앞에서 멋있게 일 할 줄 알았죠. 그런데 패션쇼를 총괄하며 이 일과 책상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죠. 이제는 책상에 멋있게 앉아 있는 것 보다 직접 땀 흘리며 발로 뛰어다닌 일이 더 멋있고 의미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학교를 졸업하고도 앞으로 이 일을 쭉 하고 싶어요.”

△남의 작업실에서 시작해 런웨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8월 20일 밤10시, 의류학과 작업실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재봉틀 소리가 작업실 안을 가득 메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학생들 틈에는 조각난 천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디자이너 한지윤씨는 작품의 밑단과 실밥을 정리하며 며칠 째 손에 붙잡고 있는 패션쇼 출품작을 마무리했다. O.F.F 디자인팀의 한씨도 3개월간의 노력과 작업실에서 매일 밤을 지새운 열정으로 패션쇼를 준비했다.

“방학 내내 일주일 중 4일을 하루에 7시간 씩 작품을 만들며 보냈어요. 패션쇼 날을 며칠 앞두고는 매일 밤 지새웠어요. 패션쇼에서 가장 클라이맥스인 뒷부분이 제 순서라 더 신경을 쓰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작품이 잘 나왔죠.”

디자인부터 작품을 만들기까지 디자인팀은 O.F.F가 대학 소속이 아닌 연합 동아리인 탓에 정해진 작업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 학교의 작업실과 여러 동아리 방을 전전했어요. 본교 작업실은 타교 학생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하루는 성신여대, 하루는 경희대 이렇게 여러 학교에서 작업했죠. O.F.F 내에 여학생이 더 많다보니 가끔 여대 작업실을 쓰게 되는 경우 남자 디자이너들은 작업실에 들어오지 못해 만들지 못하거나 다른 학교에서 따로 만드는 일도 있었죠.”

또 O.F.F가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동아리기 때문에 지도교수처럼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디자인을 할 때나 패턴 작업을 할 때마다 팀원들끼리만 계속 의견을 교환해야 했다.

“학교 수업처럼 교수님들의 피드백을 듣고 부족한 점을 고쳤다면 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나왔을 것 같아요. 제작과정 중간 중간 고비마다 ‘교수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셨을까?’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또 O.F.F 내 작품 제작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얻고, 디자이너들끼리도 서로 평가 및 의논해가면서 제작했죠.”

이러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디자인팀은 주제별로 권장 색깔을 제안해 작품들이 통일적인 느낌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내기도 했다. 만남은 싱그러운 느낌을 주는 초록, 사랑은 정열의 상징 붉은색, 이별은 우울한 느낌의 회색이었다.

“권장 색깔은 주제가 주는 느낌에 맞는 색깔일 뿐이지 반드시 사용돼야하는 색깔은 아니에요. 다만 관객에게 작품들이 ‘같은 라인’이라는 느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색깔인 것이죠.”

색깔 외에도 관객에게 각 주제를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한씨는 모델의 소품과 포즈 등 세부 사항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기도 했다. 런웨이에 오른 한씨의 모델은 실연의 아픔을 보여주길 원했던 디자이너의 의도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모델은 천 끝을 잡은 채 우아한 워킹을 하며 이별을 맞은 여인의 슬픔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며 갈채를 받았다.

“내제된 이별의 아픔을 모델이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밑에 덧댄 쉬폰 소재의 천을 우아하게 흩날리도록 손으로 천 끝을 잡은 채 워킹 하도록 부탁했죠. 적당한 바람이 불어 제가 원하는 의도가 잘 표현될 것 같아요.”

한씨의 노력이 담긴 패션쇼가 막을 내리고 인사를 하러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한씨의 미소가 조명 아래서 빛났다. 3개월간의 고생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오늘 패션쇼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 꿈인 ‘드레스 디자이너’에 한 발 더 가까워 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패션에서 더욱 경험을 쌓아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싶어요.”

△야외광장을 가득 메운 패션쇼의 열기

오후8시 디큐브시티 야외광장에서 O.F.F 정기 패션쇼가 시작하기 전 O.F.F가 제작한 영상 ‘만남, 사랑, 이별’이 상영됐다. 영화, 드라마 속 남, 녀의 설레는 만남을 발췌해 편집한 이 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패션쇼 주제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곧이어 시작된 첫 번째 쇼에서는 주제 ‘만남’의 권장 색깔인 초록색으로 포인트를 준 옷들이 주를 이뤘다. ‘Boy meets girl’을 출품한 충남대 김수현(의류․11)씨는 상의에 이성을 만나 설레는 표정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하얀 상의에 원색의 눈, 코, 입모양을 곳곳에 덧붙인 작품이었다. 만남의 설렘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김씨는 “권장 색깔을 사용해 옷을 만들었지만 주제 전달이 덜 돼 사람의 표정을 덧붙였다”며 “관객들이 만남에 설레는 남자의 표정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했다. 배제대 오지혜(의류패션․12)씨는 ‘가슴 벅차오르는’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오씨의 작품은 첫 데이트에 가는 남, 녀의 마음을 표현한 샛노란색의 커플룩을 내놨다.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첫 데이트 날의 모습을 남,녀 모델이 초록색 소품을 착용하고 다정한 포즈로 워킹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두 번째 무대는 붉은색을 권장 색깔로 한 ‘사랑’이었다. 붉은색을 사용해 정열적인 사랑에 대해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붉은 실로 이어진 사랑’을 출품한 대구가톨릭대 정경엽(패디․11)씨는 붉은 색을 작품 전체에 사용해 세부장식이 많은 드레스를 출품했다. 정씨는 “흔히들 인연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붉은실’을 많이 예로 든다”며 “인연에서 더 나아가 운명적 사랑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남대 제인(의류패션․10)씨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을 출품해 가슴 아프고 애 닳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했다. 제씨는 “사랑을 하며 겪을 수 있는 슬픈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했다. 제씨는 검은색이 주로 사용된 자신의 작품을 입은 모델에게 권장 색깔인 붉은색 구두를 신겨 슬픈 사랑 아래에 깔린 애절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이별’을 주제로 마지막 무대에는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다. 권장 색깔인 회색과 무채색 계열이 주를 이뤘으며 다양한 소품도 눈에 띄었다. 서울모드 김정혁(패디‧12)씨의 ‘그리운 손길’은 빈 맥주병을 소품으로 사용해 워킹 하는 모델을 통해 이별의 상처를 술기운으로 근근이 버텨내는 남자의 심리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헤어진 다음날’을 출품한 경희대 김수연(의상‧10)씨는 이별의 슬픔을 연회색과 카키색, 단 두 색으로 표현하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박씨는 이별의 아픔과 그 감정에 대한 절제를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원피스로 표현했다. 박씨는 “감정이 격할수록 오히려 담담하게 표현해야 그 효과가 더욱 와 닿는다”며 “세상이 무너질 듯 한 이별의 아픔을 직선으로만 표현했다”고 했다. 한씨는 이별을 겪었음에도 담담한 척하는 마음과 그 아래 숨겨진 상처받은 마음을 ‘이별의 상처’라는 작품을 통해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한 씨는 인조가죽으로는 겉으로 강한척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 아래에는 쉬폰 소재의 천을 덧대 상처받은 마음을 흩날리는 소재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또한 드레스의 어깨라인을 따라 징을 붙여서 이별 후 가시 돋친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고자 했다.

패션쇼를 관람한 연세대 황현철(기계공학․11)씨는 “여자친구의 초대로 패션쇼를 구경왔는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며 “1년 후 열릴 정기 패션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은주(심리․11)씨는 “패션쇼 의상과 무대를 전부 학생들이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