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상상력과 이야기(1)
중국의 상상력과 이야기(1)
  • 정선경 이화인문과학원 HK교수
  • 승인 2012.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양의 환상 문학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환상 소설이 유행하고 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조엔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전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미래 사회에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이야기,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흡혈귀 이야기 등이 영화로, 연극으로, 만화로, 게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환상 소설, SF영화 등 신비함 가득한 서구의 문화상품이 즐비하다. 서구 환상물이 친숙한 것에 비해서 동양인이 우리에게조차 동양적인 것은 너무도 생소하다. 과연 동양에도 환상문학이 존재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전 세계가 서구의 환상 서사물에 주목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에서 환상 문학은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떤 종류가 있었는지, 무엇을 의미했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동양의 환상 서사에 그토록 인색했던 것일까? 동양인에게 동양의 환상 문학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존재 여부마저 감히 단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동양 자체의 내재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동양에서는 사실의 기록, 즉 역사물을 중시했기 때문에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환상 문학은 공인되지 못한 방식으로 재현됐다.

한국과 중국은 고대부터 동일한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동아시아 문화의 공공성을 주도해 왔다. 각국은 공통된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사상과 철학, 문학 등의 방면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발양시켜 왔다. 공자가 불가사의한 사건이나 존재를 말하지 말라고 한 후에 기이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은 더욱 더 중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고대 중국에서 실록은 정통적인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록은 주변적인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에 사실의 기록을 중시했던 유가 철학은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을 위시한 동양의 사상과 감정의 토대를 이루었다.

내재적인 이유 이외에 외래적 요인을 찾는다면 근대 이후 서구에서 유입된 과학주의의 사고방식과 이성주의의 전통에 기준한 편견을 들 수 있다. 이성적 판단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황당한 것,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중심문화에서 밀려나게 됐다. 서구의 과학과 이성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동양 고유의 환상 문학이 받아야할 정당한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서구 과학문명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의 자기 모순적 한계를 자각한다면, 동양 환상 문학의 풍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뿌리 깊게 내려온 동양고유의 실록우월주의와 서구 이성주의의 영향으로 우리는 동양 고유의 환상 문학을 대할 때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왔던 것이다.

  또, 환상 문학은 실현 불가능한 몽환체계 혹은 특정계층의 오락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문학의 범주 뒤편에 밀려나 있었으므로 그것이 지니는 문화적 다양성은 간과되기 일쑤였다. 문화적 식민주의로 표상될 수 있는 동양 환상 서사에 대한 편견들은 동양문화 전반에 대한 억압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언급한 ‘폭력적 위계질서’처럼 문화적 열등의식을 부추기는 근거가 돼왔다.

동양만의 개별적인 문화적 특성이 간과된 채 서구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그 문화 자체가 지니는 내재적 특성을 기반으로 해서 평가돼야지 우열관계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 각국은 지리적, 문학적, 문화적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 중심에는 여전히 공통된 특질을 공유하고 있다. 환상 서사와 그것을 향유했던 동양인들의 내면의식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풀어나감으로써 서구와 변별되는 고유의 특징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 환상 문학에 대한 가치 폄하는 인간의 내면의식을 통한 문화적 접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억압도 한국과 중국 뿐 아니라 동북아권에 위치한 각 나라들을 주변 문화로 속단 하려는 관념과 연관해서 규명돼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극복하고 동양 환상 서사가 내포하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는 올 해, 중국의 환상 서사에 관해서 살펴보고 우리문학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돌이켜보자. 지금은 서구와는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동양 고유의 가치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