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이 예술의 화두가 되고 있다. 단순한 소통을 넘어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을 예술가로, 또 그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만드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본교 주변에도 비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있고, 작품의 출연진에 비예술가를 대거 포함시킨 예술가도 있다. 혹은 관객과 같은 위치에서 공연을 시작해 마지막엔 누가 예술가인지인지 구분할 수 없게 어우러져 춤추는 작품도 있다. 조기숙 교수(무용과)는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예술의 큰 화두는 통섭”이라며 “유럽에서는 이미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고 한국에서도 같은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일반인이 일상의 생활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또 예술가가 일반적인 삶에 동참할 때 그 예술이 참여 개인의 삶과 그 삶이 속한 지역사회를 성장시키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8월18일 ECC 극장에서 공연됐던 ‘춤추는 여자들’의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에서는 관객의 이야기와 춤이 작품 속으로 들어왔다. 춤추는 여자들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춤을 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혼했던 남편이랑 다시 사랑하게 됐거든요.”

배우의 고백에 마음을 연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첫사랑에게 차이지 않았을 거예요. 대학시절 첫 미팅에서 만난 첫사랑에게 거절당한 후 도서관에서 「연애의 기술」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죠.”

여러 고백들이 끝난 후 배우와 관객들은 다함께 춤을 춘다. 3명의 중견안무가 장은정(무용·88년졸)씨, 최지연씨, 김혜숙씨 등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은 우리 곁의 중년 여성들에게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난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기획자이기도 한 장은정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예술에서 관객과 예술가가 분리된 경우가 많았다”며 “관객과 공연자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 자체로서의 우리를 발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교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 현대무용 ‘춤추는 논객; 길 위의 사람들’의 출연진에는 예술가와 비예술가가 섞여있다. 전체 출연진 10명 중 일반인인 4명의 주인공들은 전문 무용수처럼 테크닉으로 무장된 춤을 추지 않는다. 뮤지컬 배우 장고씨,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씨, 시나리오 작가 장정희씨, 건축설계사 김수미씨는 자신의 삶 또는 희망을 가벼운 율동과 함께 대사나 동작으로 연기한다. 김수미 건축설계사는 이렇게 말하고 춤을 춘다.

“성실한 남편. 착한 아들. 뭐든지 다 가졌지. 그렇지만 그렇게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 이렇게 살다 가는 건가? 이게 다야?…오늘은 춤을 출 거야.”

‘춤추는 논객’은 ‘춤은 무용수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춤의 인자(DNA)를 몸속에 갖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출발한다. 이 작품은 예술성에 집착하기보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주목한다. 기획자는 “전문무용수만 춤을 출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해 ‘춤추는 논객’을 기획했다”며 “춤은 악기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로, 모든 사람이 지닌 몸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예술가와 예술가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움직임은 과거부터 조금씩 커져왔다. 비예술가가 지역민들과 소통하고자 한 예술의 흐름이 ‘커뮤니티 아트’다. 커뮤니티 아트는 대중이 예술의 소비자라는 과거의 위치를 벗어나 창조 중심의 예술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국 곳곳에서 시작됐다. 현재까지 진행된 커뮤니티 아트에는 컨테이터 라이브러리, 포천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 구룡동 환타지-신화재건프로젝트, 홍반장 아트택시 프로젝트 등이 있다.

4월2일~6월30일 진행된 홍원석의 ‘시발 아트택시 프로젝트’는 작가와 마을 주민의 만남이 예술이 된 경우다. 2010년 4월 청주에서 처음 시작된 이 아트택시는 서울 시내 어디든 예약만하면 무료로 원하는 곳까지 태워준다. 택시 내에서 아이폰으로 촬영된 영상들은 작가에 의해 재구성돼 7월17일~8월9일 창동창작스튜디오에서 전시됐다.

제5기 이화문화예술기획아카데미가 기획한 전시 ‘福作福作[;복작복작] 영천시장 보물들의 수다 한바탕’도 영천시장 상인들이 예술가가 되게 함으로써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했다. 8월18~23일 진행된 전시에서 학생들은 영천시장 상인들의 소중한 물건 30점을 전시했는데, 물건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예술로 승화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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