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 ) 다


 1.

프로젝트를 끝내고 팀장이 회식하자고 얘기하면 여자들은 십중팔구 빠지곤 해. 피 흘리는 전쟁은 낮에 하지만 그 상처는 밤에 봉합하는 법이야. 그런데 여자들은 그 봉합하는 자리에 안 나타나는 거지(중략)사실 직장은 외부의 적도 많고 내부의 적도 많은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싸울 일이 얼마나 많으냐고, 게다가 회식자리에서는 끈끈한 전우애와 더불어 중요한 정보도 오고 가.

2.

여성잡지에서 여성들의 사회생활에 대해 조언하는 칼럼의 한 대목이다. 직장생활에 대한 내용인데, 피 흘리는 전쟁, 상처의 봉합, 내/외부의 적, 전우애 등 전쟁관련용어로 가득하다. 피 흘리는 전쟁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직장이며 상처의 봉합은 프로젝트를 행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말한다. 내/외부의 적은 팀원이나 다른 프로젝트의 팀원을 이르며, 전우애는 팀원들끼리의 정을 말한다. 직장생활의 장에서 나온 말들이 전쟁의 장으로 체계적으로 전이되고 있다.

우리들이 직장생활을 전쟁의 관점에서 구조화하여 이해하고, 수행하고, 말하고 있음은 직장생활을 지각하는 우리의 방식이 은유적으로 구성되고 규정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시각은 전통적인 은유의 개념, 즉 수사적이고, 의식적이며, 목적적인 행위인 은유와 대별되어 일상적 은유라 부른다. 일상적 은유는 우리가 내뱉는 말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침에는 머리를 부팅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처럼 머리가 기계로 은유화 되거나, ‘나도 첫사랑에 뻘겋게 달아올랐던 적이 있었어, 우리 사이에 전기가 튀는 걸 느낄 수 있었다.’처럼 사랑이 물리적인 힘으로 은유화 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정의를 내리거나 기술하기 어려운 추상적 현상을 은유를 통해 표현하면 구체적인 모습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적 은유는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우리 일상의 개념적 체계는 […] 본질상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다.’

그렇다면 일상 표현 속에 담긴 은유 표현 중에서 여성을 은유화한 예시로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일상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빨리 떠오르지 않는다면 속담 속의 여성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여자와 바가지는 내돌리면 깨진다.’에 나온 바가지? ‘개와 여자는 맞아야 길이 든다.’의 개? 그것도 아니면 ‘여자는 남자 손에 붙은 밥풀이다.’의 음식물? 사물로 은유화 되었든, 동물로 은유화 되었든, 음식물로 은유화 되었든, 어느 것도 긍정적이지 않다. 기실 속담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제약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평등한 여성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속담 속의 여성의 이미지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표현에서도 목격된다. 몇 해 전 남자와 여자가 어떤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지 보기 위하여 ‘남자를’, ‘여자를’에 호응하는 서술어 목록을 모아서 분석한 보고서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목적을 위하여 여자를 사고, 일이 끝나면 여자를 버리더군요.’ ‘출세나 돈을 위해 여자를 이용하는 파렴치한, 자기에게 반해서 몸을 내맡겼던 여자를 떼어버리고 가버린 남자’처럼 여성은 사고, 버리고, 가지고 놀며, 몸에 부착한 물건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도 여자를 따먹는다는 소리가 있다.’처럼 맛을 보는 음식이었으며 ‘몰래 여자를 덮쳐 잡아다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그 여자를 놓아 보냈다.’처럼 끌고 나가고, 사냥하고, 놓칠 수 있는 동물이었다. 이 외에도 시들어버리는 식물, 공격과 정복의 대상으로도 표현되었다. 

물론 남성 역시 사고파는 물건, 사냥의 대상인 동물, 피었다가 져버리는 식물 등 동일한 모습으로 은유화 되었다. 비율 면에서도 남녀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남녀 차이를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남자/여자와 호응하는 서술어에서 고빈도로 나타나는 것만 놓고 봤을 때, 물건이라도 해도 남자는 고르고 택하여 얻는 대상인 반면, 여자는 사고파는 대상, 얻고 차지하고 갖거나 버리는 대상으로 나타나 여성을 유독 수수가능하고 탈취가능하며 폐기돼 버리는 존재로 여기는 언중의 인식체계를 내보였다.  묘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1920, 30년에 나온 잡지 <신여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 잡지는 신여성 담론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당시 신여성은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저항의 상징이었으므로, 이들을 대하는 언중의 시각 또한 전통적인 여성을 대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물건이며, 누군가의 소유물이며 미천한 존재였다. ‘신여자들은 하나도 쓸 것이 있느니 없느니’에서는 이용대상물인 여성을, ‘남자 그들은 또 다른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하여’에서는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을, ‘자기는 꼼짝 아니하면서 여자만 부려먹는다.’에서는 미천한 존재로 인식된 여성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이 사고파는 대상, 누군가의 소유물, 마소와 같은 재산증식의 수단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여성에게 시집은 감옥과 같은 곳으로 느껴져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시집에 갇히게 된 불쌍한 언니’로 표현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체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은유를 시적 상상력과 수사적 풍부함을 살려주는 도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의 은유를 생각해 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은유는 일상적인 삶에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 여성의 은유체계를 살펴본 결과, 전통적으로 여성은 사고파는 대상, 미천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개념적 은유체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은유 표현과는 다른 양상으로, 언중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또는 의식적으로 은폐해왔던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 속에 담긴 은유적 표현들을 찾아 이를 구조화해보라. 여성에게 씌워진 은유의 베일을 걷어내고 은폐되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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