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위 이화 시네마떼끄(시떼, Cinematheque)는 대동제를 맞아 ‘세계 영화사’를 주제로 15일~25일 학생문화관 343호에서 영화제 ‘여덟 개의 시선’을 진행했다. 여덟 개의 시선은 시떼가 대동제를 맞아 준비한 영화제로, 2주간 8개국(각2편 총16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시떼는 영화 상영과 함께 ‘지구본을 돌려 지명한 나라 맞추기’, ‘시떼/아르헨티나(태국, 루마니아, 브라질 등)는 ○○다’ 빈칸 적기 등의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는 미국 등 주요 영화 강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영화사를 탈피해 ‘주변’을 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떼가 선정한 국가는 태국, 루마니아, 브라질, 터키, 베트남, 아르헨티나, 폴란드, 이스라엘 등 8개다. 영화제는 1990~2000년대의 영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했다. 본지는 여덟 개의 시선에서 상영하는 16편 중 8편을 통해 각국의 시선을 제시한다.

 조방원(Zhao Fang Yuan, 국문·08)씨는 “‘비밀의 눈동자’라는 영화 제목에 끌려서 관람하게 됐다”며 “대형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는 영화를 통해 문학적 영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태국, “방콕에 가면 엉덩이에 꼬리가 날거야”

 ‘시티즌 독’은 태국의 은어로 ‘이름 없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영화 <시티즌 독>은 제목과 달리 화면 가득 찬 플라스틱병 언덕, 넓게 펼쳐진 들판 등 파스텔 색감의 환상적인 영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방콕에 가면 엉덩이에 꼬리가 날거야”라는 할머니의 외침으로 시작하는 영화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방콕’으로 향하는 젊은이 ‘포드’와 ‘진’이 등장한다.

 영화는 태국의 젊은이들이 방콕에서 겪는 동경과 꿈, 그리고 윤락과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기형적 팽창 등을 통해 방콕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농경사회와 달리 도시 방콕은 컨테이너 벨트에 손가락이 잘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돌아간다. 절 옆에 창녀촌이 있고, 부촌과 빈촌이 맞붙어 있는 ‘꿈의 도시’ 방콕은 태국의 영화사와 닮아있기도 하다.

 <시티즌 독>은 오염의 상징인 플라스틱병 언덕 위에서 포드와 진이 재회하면서 끝을 맺는다. 위시트 사사나티앙(Wisit Sasanatieng)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상대의 오염된 부분마저 끌어안는 도시인의 소외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


△루마니아, 4·3·2에 담긴 생존의 기억

 “그게 나왔어. 화장실에 있어.”

 낙태 후 ‘가비타’는 덤덤한 말투로 친구 ‘오틸리아’에게 말한다. 화장실 수건에 쌓인 빨간 태아가 살아간 시간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4달, 3주, 그리고 2일>이다.

 <4달, 3주, 그리고 2일>의 배경인 1987년, 약27년간 권력을 잡았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독재 정권 때는 인구 증가의 목적으로 피임, 낙태가 금지됐다. 독재 사회의 엄중한 감시 속에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불법 낙태 수술을 감행한다.

 크리스티안 문쥬(Cristian Mungiu) 감독은 롱테이크(long take,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 기법으로 오틸리아가 느끼는 루마니아 사회의 냉담한 모습을 담는다. 권위적인 호텔 직원, 오틸리아에게 몸을 요구하는 불법 시술 의사,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가비타의 남자친구 등 오틸리아와 가비타가 여성으로서 겪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가혹하기만 하다. 의사와 관계를 맺으면서까지 가비타의 낙태를 도우려는 오틸리아의 노력에는 가비타를 향한 사회적 약자로서 동질감과 연민이 묻어있다.

 하수구에 태아를 버린 후 오틸라아와 가비타는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장, 간 요리를 먹는다. 식탁에 앉아 먹은 후 관객을 바라보는 오틸리아와 가비타의 마지막 시선을 통해 영화는 시대의 책임을 묻는다.


△브라질, 동행을 통한 하층민의 성장기

 브라질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중앙역>은 살인, 가난 등이 일상적인 ‘중앙역’을 배경으로 한다. 중앙역 근처에 사는 퇴임 교사 ‘도라’는 문맹을 위해 1달러를 받고 편지를 대필하면서 단 한 번도 편지를 붙이지 않는 괴팍함을 보인다. 도라는 브라질 끝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부치려는 여자와 그의 아들 ‘조슈에’를 만나고, 교통사고로 여자가 갑작스럽게 죽자 조슈에와 동행하게 된다.

 사회적인 수탈과 소외로 상처 입은 둘은 브라질의 광활한 대지를 횡단하는 가운데 다툼과 이해를 반복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중간에 만나는 트럭운전사와의 교감, 고생 끝에 만난 조슈에의 배다른 형제와의 만남 등은 브라질의 척박한 삶 속 희망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는 둘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풍파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찾아 회귀, 성장하는 하층민의 모습을 조망한다. 90년대 브라질의 하층민은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하며 황폐한 삶을 이어갔다. 도라와 조슈에의 모난 성격은 하층민으로서 브라질의 극단적 빈부격차, 물질문명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도라가 조슈에를 떠나면서 드디어 편지를 부칠 때 관객은 도라의 성장에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터키, 마른 항구도시에 느끼는 고독감

 <우작>은 이스탄불이라는 현실적 공간에서 고독을 느끼는 ‘마흐무트’와 ‘유수프’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 속 터키는 도시로 몰려오는 농촌 청년들의 구직과 실업,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침체된 경제 상황 속에서 유수프는 상경해 이스탄불에 사는 사촌 마흐무트에게 얹혀살며 선원 일을 구한다. 도시에 산 지 오래된 마흐무트는 사진가로서 열정을 잃고 부유한다.

 사회적 분위기는 끊임없는 불안감으로 둘을 압박하고 영화는 침묵과 쓸쓸한 영상을 통해 이들의 고독감을 강조한다. 두 인물은 각자의 고독감에 휩싸여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쥐는 주방을 도대체 떠날 줄 몰라. 우리는 이렇게 모두 잡혀 사는데, 저 쥐들은 도무지 잡힐 줄 모르니!”

 마흐무트는 화풀이하듯 유수프에게 대사를 뱉는다. 그날 그들은 주방에 상주하던 쥐를 잡고, 늘 마흐무트에게 ‘쥐’라고 불렸던 유수프는 도둑으로 몰려 집을 떠난다.

 우작(uzak)은 터키어로 ‘멀리’, ‘아득히 먼’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혼자 남은 마흐무트가 벤치에 앉아 ‘아득히 먼’ 항구를 바라보는 마지막 4분의 영상은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베트남, 세 사람이 말하는 베트남의 현주소

 <쓰리 시즌(three seasons)>은 격변하는 사이공을 배경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나병에 걸려 손가락을 잃은 시인 ‘다오’와 그의 연꽃 농장에서 일하는 ‘키엔’, 시클로(베트남의 탈것)를 운전하는 ‘하이’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 ‘렌’, 베트남에 두고 온 딸을 찾는 ‘제임스’와 만물 상자를 목에 걸고 물건을 파는 소년 ‘우디’의 관계는 동시에 도시화, 매춘 성행, 아동 노동 등 베트남의 장기적 문제를 드러낸다.

 <쓰리 시즌>은 표면적으로 연관 없는 인물들을 교차해 거대한 사회 문제 속 개인이 겪는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새벽마다 연꽃을 꺾어 파는 렌은 길거리에 있는 조화 연꽃을 보고 무력감을 느낀다. 시클로 운전수 하이는 렌이 파는 연꽃을 사 ‘호텔은 별세계’라고 생각하는 창녀 렌에게 전해준다.

 ‘베트남’하면 흔히 소재가 되는 ‘베트남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점은 <쓰리 시즌>의 독특한 매력이다. 어딘가 남루한 주인공들은 서로 교감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영화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흰 연꽃이 가득 핀 못, 붉은 꽃이 휘날리는 숲길 등의 공간을 통해 비참한 현실을 넘어설 힘을 제공한다.


△아르헨티나, 25년의 기억이 맺는 희생과 사랑

 “남자들은 다 바꾸지. 얼굴, 집, 가족, 애인, 종교, 신. 근데 못 바꾸는 게 하나 있어. 바로 자기 열정이야.”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군부 세력과 극심한 인플레이션, 사회 갈등, 정치 폭력 등으로 혼란한 시기였던 1975년을 담고 있다. 25년이 지난 후인 2010년, 주인공 ‘벤야민’은 1975년 겪은 강간살인의 기억을 소설로 쓰기로 하면서 옛사랑 ‘이레네’를 찾아간다. 영화는 벤야민 개인의 삶과 25년을 넘나드는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 ‘모랄레스’를 통해 독재 정권의 그늘을 볼 수 있다. 그는 강간살해 당한 아내 ‘릴리아나’의 살해범인 ‘고메즈’를 향한 복수를 위해 인생을 건다. 반면, 고메즈는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면죄 받는다.

 영화는 복수와 진실을 위해 긴장감 있게 흘러가는 가운데 25년 기억을 통한 벤야민의 사랑과 열정을 녹인다. 벤야민이 모랄레스에게 릴리아나 없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냐고 묻자, 그는 “남는 건 기억밖에 없죠. 최대한 좋은 것을 골라요.”라고 답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벤야민은 예전에 메모지에 적어놨던 ‘Te Mo(나는 두렵다)’ 사이에 비로소 ‘A’를 적으며 ‘Te A Mo(널 사랑해)’를 발견하고, 그동안 두려움을 느껴 회피해왔던 이레나와의 사랑에 마주한다.


△폴란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금지됐을 때

 “우리가 하는 음악은 달콤하지 않아.”

 주인공 ‘야넥’은 ‘ATIL, All that I love(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밴드명에 달콤하다는 말을 하는 연인 ‘바시아’에게 대답한다. 주인공인 4인조 소년들이 ‘달콤하지 않은’ 펑크 음악을 하지만 <밴드명: 올 댓 아이 러브>는 음악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1980년대 폴란드가 겪어야 했던 거대한 이념적 갈등을 그린다. 야넥은 공산당 군인인 아버지와 반대편인 자유노조에서 활동하는 연인 바시아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혼란 속 야넥은 오직 ‘no future’가 적힌 버스 안에서 밴드 ‘ATIL’이 하는 펑크 음악을 통해 탈출구를 찾는다.

 야넥에게 음악이란 저항의 일종이다. 이념이 누르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부르짖음은 그의 청춘을 통해 표출된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등장하는 파도는 청춘을 향한 위기를 상징한다. 소년들은 몰려오는 물결에 당당하게 마주하면서 사랑과 자유를 위해 도약한다.


△이스라엘, 레몬향보다 시린 인간의 몰이해

 주인공 ‘살마’가 누운 방 안에는 레몬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다. 레몬이 떨어지는 소리에 ‘살마’는 잠이 깨고 밖으로 나가자 노랗게 익은 레몬이 무성한 잎 사이에 열렸다. 에란 리클리스(Eran Riklis) 감독의 영토 분쟁을 다룬 영화 <레몬트리>다.

 <레몬트리>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계에서 농장을 운영해온 살마와 안보 문제로 이를 없애려는 이스라엘 장관 사이의 분쟁에 대해 담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A.D. 77년 로마와 전쟁에서 패한 후 흩어져 살게 됐다. 그들은 미국, 독일 등지로 뻗어가 삶의 영역을 넓혔고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자신의 땅을 찾을 기회가 온다. 땅을 잃은 긴 세월 동안 그 땅에 정착했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깊은 영토 분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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