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애플의 창업자이며 아이폰을 만들어 현대인의 삶을 바꾸어 놓은 스티브잡스가 56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타계하였다. 그의 일생과 업적을 조명하는 서적들이 발간되고 신문기사, 방송물이 넘쳐났으며 추모의 물결로 전 세계가 들썩였다. 당시 ‘왜 우리나라에는 스티브잡스가 없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인물을 배출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 자주 들려왔다. 

국산 스마트 폰이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에서도 자주 보이는 낯익은 한국산 스마트 폰과 귀에 들려오는 친근한 신호음들에 자랑스러운 느낌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우면서도 찜찜한 구석은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스마트폰은 훌륭한 유사품이 아닐까’ 혹은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스마트폰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와 같은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의 디지털 문화를 이끌어갈 스티브잡스와 같은 문화적 아이콘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물론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와 근면 성실함을 전제로 할 때, 머지않은 미래에 이 땅에서 그런 인물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왜 지금까지 그렇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많은 나라들 중 하필 미국에서 그런 인물이 나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닐까 한다. 내가 받은 교육, 특히 한 인간의 감수성과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청소년기 중고교 시절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볼 때 이는 분명해진다. 안타깝지만 당시에 내가 받았던 교육은 다소 획일화된 것이었다. 물론 창의적인 교육을 지향하셨던 몇몇 선생님들의 노력이 기억나기도 하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또 그 답을 잘 외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실제로 이를 터득한 친구들이 좋은 성적을 얻고 학급의 리더로 인정받곤 하였다. 어쩌다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가 다소 엉뚱한 질문이라도 하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선생님의 엄한 꾸지람이었고, 운이 없는 경우에는 불려나가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들은 질문까지도 선생님이 좋아하실 만한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한 미국 학교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교육에 익숙해진 나의 선입견을 깨고도 남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유학 초기의 어느 날, 음악이론 수업시간에 한 흑인 학생이 선생님께 질문을 하였다. 우선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눕다시피 한 자세부터가 한국적인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불량하였으며, 질문의 내용도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난 황당한 종류의 것이었다. 평소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담당선생님이 어떻게 반응하실까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는데, 결과는 너무나도 의외였다. 선생님은 좋은 질문이라고 그 학생을 칭찬해주며, 긴 시간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답해 주시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연발하고 음악에도 영 소질이 없어 보이던 이런 미국 학생들도, 학교 생활동안 선생님의 격려와 지도를 통해 크게 성장하여 졸업하는 것을 보고, 학생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발전시켜주는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대학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스티브 잡스도 평범하고 성실한 모범생이었다기보다는 내가 경험한, 다소 엉뚱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들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나는 배우는 학생의 단계를 지나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오케스트라 시간에 우리가 연주하는 곡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연주를 들었는지 그 느낌은 어땠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손을 들거나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작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중에 복도에서 개인적으로 마주쳤을 때 다시 물어보면, 학생들은 ‘사실 저도 그 곡을 들어보았는데 느낌이 이러저러 했어요……’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내가 다시 묻는다. ‘왜 수업시간에는 손을 들고 이야기하지 않았니?’ 이 질문에는 또 대부분이 분명히 답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미루어볼 때, 내가 학창시절 받았던 한국의 교육과 지금의 대학생들이 받은 교육이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한국의 교육 문제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 몇 마디의 말이나 한두 가지의 해결책만으로 전반적인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단순한 지식습득의 효율성을 넘어서, 학생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키워줄 수 있는 환경 조성이야말로 지금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점이 보완될 때, 이 땅에서도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제2의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의적인 인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