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 마음의 소리, 치즈인더트랩, 이말년씨리즈...... 모르면 간첩이다. 요즘 지하철에선 사람들이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PC를 들고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웹툰 때문인데,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 폰으로 손쉽게 볼 수 있는 웹툰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청량제가 되고 있어서 화제다.

웹툰이란 웹과 카툰의 합성어로 단순히 만화책을 스캔해 웹에 올리는 만화가 아니라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해 만들어진 만화를 말한다.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고 만화가들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만화는 희극 형식의 연속 그림인 ‘Comics’를 지칭한다. 앞서 언급한 웹툰도 comics의 일종이다. 그러나 만화에는 희극적 픽션의 연속 만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만화는 우리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가끔 다른 뜻으로 만들어지는 만화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만평이다. ‘만평’은 cartoon형식의 한 컷 만화로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시사만화로서 다른 만화처럼 단순한 재미와 오락의 수준을 넘어 중요한 대중매체의 수단으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독특한 형태의 예술로서 만화 속에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또한 그 시대의 부조리, 사회적 모순, 정치적 부패 등의 사회 문제에 따끔하게 일침을 놓음으로써 독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한 컷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신문 만평은 권력을 견제하는 풍자와 비판으로 늘 독자들 곁을 지켜왔다. 하지만,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웹툰과는 달리, 최근 들어 주요 신문에서 만평이 사라지는 등 시사만평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일간지 가운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신문사에선 시사만평은 사라진지 오래고 오직 경향신문과 한겨레, 그리고 격일로 만평을 내보내는 중앙일보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원인에는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이 많은 시사만평 자체의 속성이 역설적으로 보수 신문에서 만평이 위축되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보다 진취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만평작가의 문제의식은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보지에 비해 보수지에서 만평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양한 매체들이 생기면서 신문 자체가 산업적으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즉, 신문 소비형태가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지면서 시사만화 자체가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온 것이다. 매체의 변화에 따라 잊혀지고 있는 신문만평과는 달리, 웹툰은 인터넷이라는 장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면서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작품에 대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웹툰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작가와 독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능동적인 독자층을 만들었고 이러한 참여를 통해 작가가 작품을 올렸을 때 즉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독자의 의견이 작품 구성에 영향력을 끼치는 등 작가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더불어, 웹툰은 가볍게 볼 수 있는 무난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출판 및 캐릭터 업계 시장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이 핵심적으로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만평은 매체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며 민중의 대변자로서의 만평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만평가들은 신문 매체에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진로를 개척하며 스스로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매체가 원하는 경우 구매해서 게재할 수 있도록 하는 구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또한, 시사만화가 주로 정치에 편향되어 있는 점을 보완하여 정치뿐만 아니라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어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도록 한다면 더 많은 매체에서 찾게 될 것이다. 만평가 특유의 재치 있는 발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좀 더 생활 밀착형이 된다면 소구력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평은 분명 신문에서 중요한 시각적 기사로서 독자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설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갖가지 문제점을 이미지화하여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만평, 이제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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