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생 때, 필자의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 가족회의를 했다. 거실에 작은 책상을 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 필자는 로봇이 그려진 종합 장에 가족회의의 내용을 열심히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기 가족회의의 안건은 ‘숙제를 열심히 하자’, ‘가방은 전날 챙기고 자자’ 등의 내용이었다. 

 회의는 필자의 오빠와 필자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기억 속에서 잊혔던 가족회의가 최근 다시 부활했다. 10년 만에 부활한 가족회의의 안건은 ‘가사분담’에 관한 내용이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양육 등의 집안일에 전념하셨다. 가끔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셨지만, 필자와 필자의 오빠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삼으시는 듯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작년에 필자까지 모두 대학에 진학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기로 했다. 가족 모두 찬성했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직장생활에 만족하셨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간과했던 문제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즐기던 어머니는 점점 직장생활과 가사일까지 견뎌내는 게 힘들어 보였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께서 ‘힘들다’라는 말을 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어머니께서 필자에게 처음으로 힘들다는 말을 하셨다. 필자가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도와드린다고 했지만 필자 나름의 바쁜 생활에 지쳐 어머니의 힘든 생활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케이크를 샀다. 로봇이 아닌 예쁜 풍경이 그려진 노트도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10년 전 가족회의 때처럼 거실에 상을 펴고 케이크에 초를 켠 후 온 가족을 불렀다. 그리고 가족회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필자의 가족은 가족회의의 가사분담을 토대로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아버지는 빨래 널고 접기, 어머니는 밥 짓기와 빨래, 오빠는 청소와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 차로 마중 나가기, 필자는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맡았다. 가족회의 결과 가사분담뿐 아니라 2주에 한 번 일요일마다 가족끼리 문화활동을 하는 ‘가족 문화캠프’, 매일 서로 안부를 묻고 일주일에 한 번 편지를 쓰는 ‘짝’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막내의 뜬금없는 제안은 모두 당황한 분위기였다.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와 오빠는 문자보내기와 편지쓰기 등의 가족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해 먼저 문자를 보내야 겨우 짧게 답장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용기를 내서 가족회의를 제안한 이유는 필자의 중심을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 가치에는 ‘돈’, ‘명예’, ‘직업’, ‘사랑’ 등이 있다. 필자도 1학년 때 필자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이제 겨우 3학기째 다니고 있지만 여러 경험을 하면서 결국 필자의 중심은 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은 ‘오글’거리는 가족회의를 계기로 잠시 원자화됐던 우리 가족은 10년 전 그때처럼 다시 하나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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