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의하면 전국 전통시장 일평균매출액은 2005년 5천8백만 원에서 2010년 4천981만 원으로 감소했다. 이에 서울시는 1월4일 노후 시설을 개선하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등 쇼핑 환경을 개선해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래시장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요즘, 본교에서 가까운 ▲영천시장 ▲인왕시장 ▲통인시장을 소개한다.

△채소는 오로지 직거래로, 그러나 활성화 위해 고심하는 인왕시장

 어스름이 깔린 오전6시 배추와 양파를 가득 실은 트럭이 하나 둘씩 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상인들은 부지런히 채소를 점포 앞에 나르고, 쭈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기 시작한다. 달래상회, 충남상회, 경북상회 등 점포 앞에는 양파, 배추, 열무 등 당일 들여온 채소가 사람 앉은키 만큼 쌓인다.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인왕시장의 분주한 아침 풍경이다.

 1976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왕시장은 산지에서 농산물을 매일 직거래 유통하기 때문에 채소가 신선하기로 유명하다. 중앙에서 직거래를 관리하는 시스템 없이도 약40년 동안 직거래가 이루어진 이유 중 하나는 산지가 가까워 운반이 편하기 때문이다. 구파발만 지나도 비닐하우스 시설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곳이 많다. 인왕시장 상인회 양순태 총무는 “우리 시장보다 더 큰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나 구리 농산물 시장에서 물량을 가져오려면 경매 시간에 맞춰 새벽 3~4시까지 시장으로 가야한다”며 “그러나 일산은 30~40분이면 차를 타고 갈 수 있어”고 말했다.

 산지가 일산처럼 가깝지 않고 멀리 지방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채소를 당일 점포로 들여와 신선하게 유지한다. 달래상회 앞에 가지런히 놓인 참나물, 달래 등은 뿌리가 깨끗하고 이파리가 싱싱하다. 달래상회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5시30분 약2톤의 채소를 지방의 산지에서 가져온다. 달래상회 김창선 사장은 “미나리는 전주에서 배추는 충청도에서 직접 구매해 당일 점포로 가지고 온다”고 말했다.

 다른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채소가 산지에서 바로 들어오기 때문에 가격은 마트나 다른 소매시장보다 싼 편이다. 유통비, 중매인 비용 등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달래상회에서 시장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일산에서 열무, 얼갈이, 시금치 등을 직접 재배해 판매하는 대진상회가 있다. 이곳의 채소는 다른 점포와 마찬가지로 마트나 소매시장보다 500원~1천 원 정도 싸다. 대진상회 김형도 사장은 “시장 가까운 데에 산지가 있어 유통비가 절감된다”며 “그래서 소비자에게 채소를 더 저렴하게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장을 보러온 손아네스(서울시 용산구·52)씨는 몇 년 전 서대문구에서 용산구로 이사를 갔지만 여전히 1~2주마다 인왕시장을 방문한다. 손씨는 “현재의 집 근처에는 인왕시장만큼 신선한 채소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인왕시장에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열무김치를 만들려고 열무를 사서 집에 가던 중인 ㄱ씨도 “인왕시장의 채소가 싸고 신선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장 보려고 들른다”고 말했다.

 채소의 신선도와 저렴한 가격 이외에도 인왕시장이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솔직한 마케팅 덕분이다. 35년 동안 열무 장사를 한 삼일상회 최춘자(홍제동·71)씨는 “채소는 24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뜨기 때문에 손님에게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며 “하루 이상 지난 채소나 속이 뜬 것은 손님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500원~1천 원 싸게 판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시장이 예전만큼 활기차지 못하고 손님도 많이 줄었다고 토로한다. 젊은 층이 재래시장보다 이용하기 편리한 대형마트나 SSM(Super super market, 기업형 슈퍼마켓)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진상회 김 사장은 인왕시장 건너편에 들어선 굿모닝 마트를 가리키며 “젊은 층은 세일을 자주 하고 몇천 원짜리 물건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마트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돈 몇 푼을 카드로 받는 것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시장 상인들은 작년 상인회를 결성했다. 상인회는 젊은 층을 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빈 점포를 청년 창업자에게 임대하거나 가격표시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왕시장은 정부로부터 약8천5백만 원을 지원받아 이미 8개 점포를 청년 창업자에게 임대했다. 상인회 양순태 총무는 “젊은 층이 재래시장에 자주 찾아와야 시장도 살아난다”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재 상인들이 마음을 모아 계획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작아서 더 정겨운 영천시장


 독립문에서 보이는 ‘달인 꽈배기집’에서 왼쪽으로 돌면 좁은 골목길이 나타난다. 노점이 펼쳐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얼린 요구르트와 하드를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 뒤로 영천시장의 초입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있다. 

 직선으로 뻗은 시장 골목을 따라 족발, 부침개, 떡볶이, 꽈배기 등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가 많다. 낡은 천막 아래 주인과 단골손님이 족발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교 후 함께 떡볶이를 먹는 중·고등학생들로 골목이 시끌벅적하다. 한 부침개 가게에서 만난 마포구민 ㄴ씨는 동료 ㄷ씨와 소주를 나눠 마시며 “옛날 생각도 나고 이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맛있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영천시장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며 단골손님이 계속 찾는 음식점이 많다. 그 중 정미자(서울시 서대문구·52)씨가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영천 떡볶이’ 집은 영천시장의 명물이다. 영천 떡볶이집은 떡볶이, 튀김, 순대, 김밥 등 6가지 메뉴를 20년 동안 판매해 왔다. 가격도 10년 전부터 각각 2천 원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영천 떡볶이집은 한결같이 허름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매출이 올라 한때 더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장판으로 리모델링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그는 “손님 주머니에 단돈 1천 원이 있어도 가게에 들어와 떡볶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날 친구와 함께 떡볶이를 먹기 위해 영천 떡볶이 집을 찾은 배화여고 이주현(서울시 종로구·19)씨는 약14년째 떡볶이집을 찾는다. 엄마를 따라 5살 때부터 영천 떡볶이집을 찾은 이씨는 “떡이 쫄깃쫄깃하고 적당히 매워서 계속 찾게 된다”고 말했다. 떡볶이를 먹던 이씨를 보던 정씨는 “저 아이 엄마가 처녀 때부터 우리 가게에 들른 단골손님”이라고 말하며 회상에 잠겼다.

 영천 떡볶이집 건너편에는 윤영섭(서울시 서대문구·59)씨가 30년째 ‘영천 원조 꽈배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본교생을 비롯한 인근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이 자주 찾는 영천 원조 꽈배기 가게에서 윤씨는 꽈배기 4개를 1천 원에 팔고 있다. 그는 초등학생 때 다녀간 여자아이가 20년이 지나고 아기엄마가 돼 임신한 채로 꽈배기를 사러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친구가 결혼 후에도 어릴 때 먹었던 꽈배기 맛이 자꾸 생각나 다시 찾아왔다”고 말했다.

 윤씨는 젊었을 적 제과점에서 10년간 일한 경험으로 꽈배기 집을 시작했다. 그는 “초기에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아 200°C가 넘는 기름에 화상을 입은 경험도 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고 말했다.

△현대와 발맞추는 통인시장⋯이색 공간 눈길 끌어

 경복궁역 2번 출구를 지나 걷다보면 높은 상가건물 사이로 갈빗대 모양의 나무처마와 유리지붕으로 이루어진 정문이 눈에 띤다. 골목에 들어서면 가게입구에 알록달록한 과일그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싱싱과일나라’와 벽면에 스티로폼 물고기 떼가 붙어있는 ‘도영이네 생선집’ 등 가지각색의 상점들을 볼 수 있다. 고개를 들어보면 익살맞은 호랑이들이 하늘거리는 천에 그려진 채 사람들을 바라본다. 멋과 맛이 공존하는 곳, 이곳은 통인시장이다.

 통인시장은 2006년 어수선하던 상점이 일렬로 정비되고 아케이드 지붕과 전등이 새로 만들어지는 등 시설이 현대화됐다.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소영레(서울시 종로구·69)씨는 “전통시장 조성사업으로 아케이드 지붕이 생긴 후부터 비를 걱정하지 않는다”며 “지저분하고 정신없던 시장골목이 정리되자 손님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점마다 달려있는 조형물은 작년 6월, ‘시장조각설치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철조망과 음식봉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가게의 특성에 맞게 만든 것이다. 상가 주인과 진열된 물건의 특징을 살리면서 예술과 생활이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전시물들이라는 점에서 통인시장의 조형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비닐장갑 속에 색종이를 넣어 만든 조형물을 ‘반찬나라’ 가게에  설치한 하윤주(서울시 서초구·19)씨는 “2주간 방과 후 가게를 방문해 작업을 했는데 상인들이 직접 파는 음식을 나눠주면서 응원해준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골목을 따라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객만족센터’가 나온다. 센터의 벽면에는 통인시장 주변 관광지도와 통인시장 전체 상점지도가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고, 지도에 표시된 상점에는 상점 이름과 전화번호, 주인소개와 사연이 간단하게 소개돼 있어 시장 전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벽면의 내용은 리플랫으로도 제작돼 간편히 들고 다닐수 도 있다. 상점 위치를 찾아 헤매야하는 기존의 재래시장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고객만족센터 좌측의 나무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면 ‘내맘대로 도시락 cafe’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는 도시락쿠폰을 구입해야 한다. 500원 상당의 도시락쿠폰을 원하는 만큼 구입하면 쿠폰과 함께 빈 도시락 통을 주는데, 도시락카페 가맹상점에서 쿠폰으로 500원에서 1천 원씩 음식을 구입해 도시락에 담아오면 된다. 구입이 끝나고 남은 쿠폰은 카페에서 환불받을 수 있다.

 김준(서울시 영등포구·24)씨는 “TV에서 도시락카페를 보고 방문했다”며 “음식을 원하는 대로 조금씩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장 한복판에 이렇게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도시락카페는 상인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정순(서울시 종로구·54)씨는 “도시락 카페가 생기고 매출이 세 배정도 올랐다”며 “도시락에 조금 담아갔다가 맛있어서 다시 오는 손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도시락카페는 작년 1월 16일 시작된 것으로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 ‘통인커뮤니티’가 운영하는 것이다. 마을기업이란 지역공동체의 특화자원을 활용한 사업으로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마을 단위의 기업이다.

 통인시장은 시장의 현대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통인시장 상인들이 주주로 있는 통인커뮤니티는 기존의 배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콜센터와 배송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상인들이 가게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손수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DIY(Do It Yourself) 목공방 또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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