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햏햏, 므흣, (무엇이)갑이다‘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생전 본 적도 없는 것 같거나, 사용해 왔던 말이 분명 맞는데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서 느꼈던 당혹감, 황당함을 잊을 수 없다. 아햏햏은 모호하고 기분이 언짢은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로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적절히 해석이 가능한 단어다. 므흣은 아마 마음이 넉넉하여 포근하다는 의미를 가진 흐믓하다에서 왔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므흣한 동영상, 므흣한 레이싱 걸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마지막으로 ‘(무엇이)갑이다’는 압도적인 최상위의 자리에 있을 때 그를 형용하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말이며, 새로 만들어진 단어, 즉 신어라 부른다.

신어는 아햏햏처럼 기존의 말과 유연성이 전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말도 있지만, 므흣이나 갑처럼 기존의 말을 사용하여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말을 자르기도 하고(개드립<개+애드립) 축약하기도 하며(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소리) 아니면 유래를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사연이 얽히기도 한다. 마지막의 경우는 레알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는 “~했다는 게 사실?”이라는 구에서 “~했다는 게 (최)진실?”로 바뀌었다가 2008년 그녀의 죽음 이후 “~했다는 게 리얼?”로 마지막 단어가 영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9년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영향을 받아, 리얼을 레알로 대체하고 앞 뒤 단어는 뚝 자른 채 레알 하나만으로 진짜로, 진심으로의 의미를 가진 신어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변화의 중간을 재구하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을 만큼 우연히(?) 레알이 된 셈이다.

이처럼 신어는 사이버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기 때문에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대화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단어는 청자에게 해석을 해야 하는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새로운 언어는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설령 만들어진다 해도 널리 사용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사이버 세상은 비대면적인 공간이며, 수만 명의 익명의 누리꾼들이 동시에 접속하고 있다. 직접 상대하지 않으므로 신어를 생성하는 데 부담감도 덜하고 일단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는 그 공간 내에서 용인되기만 하면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어 생명력을 얻는다.

문제는 그들만의 세상이 현실 세상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인터넷이 가진 영향력만큼이나 사이버 공간 안에서의 언어는 현실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쳐, 신어목록의 대부분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적절성을 용인 받았던 말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신어 목록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짐승남, 힘줄남, 꽃미남, 초식남, 토이남(남성) 건어물녀, 산낙지녀, 오크녀, 엘프녀, 베이글녀, 안돼녀, 골드미스, 알파걸(여성) 등이 그것이다. 짐승남, 베이글녀에서 현대 남녀에게 요구하는 육체적인 미를 알 수 있고 초식남, 건어물녀에서는 이성에게 별관심이 없는 새로운 유형의 남녀형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공부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여성을 칭하는 알파걸이나 결혼과 상관없이 자신의 캐리어를 쌓는 데 열심인 골드미스를 통해 여성의 변화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여성에 관한 신어 목록을 비교하면서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은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짐승남, 근육에 불거진 힘줄이나 핏줄이 떠오르는 힘줄남이 대세다. 물론 꽃미남이나 토이남처럼 부드럽고 감성적인 데 호소하는 남성을 이상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말벅지, 식스팩의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신체 용어를 염두에 두면 짐승과 같이 야성적인 면모를 뽐내는 남자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우선 미적 기준에 부합하거나 부합치 않은 여성 모두를 지칭하고 있는 게 특징적이다. 엘프녀, 베이글녀처럼 아름답고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을 요구하는 것에 더해 오크녀, 안돼녀(안경+돼지+녀)와 같이 미적 기준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을 구체화하여 부르고 있다. 이에 더하여 남성은 말벅지, 식스팩밖에 없는 데 비하여 여성은 도자기피부, 개미허리, 꿀벅지, 황금골반, S라인, 뼈벅지, 종잇장몸매와 같이 다수의 어휘가 존재한다. 신체를 세분화하여 미적가치에 부합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 짓는 것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불공평한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남성은 사회적 활동을 왕성하게 수행함으로써 성적 매력이 다소 낮더라도 이성에게 매력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여성은 경제 활동이나 권력 구조에서 약자이며, 따라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대상화는 남성보다 더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의 신체를 세분화하여 미적기준을 시시콜콜히 상정해 놓은 신어목록을 보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 시작된 신어 만들기가 오히려 여성을 강제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되고 있음에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더구나 서로의 경험, 정보,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누리꾼들이 유독 여성을 ‘보여지는 대상, 성적 대상물’로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자신의 신체를 긍정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여 앞으로 만들어질 신어 목록에서는 여성의 불공평한 성적대상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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