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통해 강한 엄마, 따뜻한 엄마, 집착하는 엄마 등 다양한 모성 선보여


창립 126주년 기념 국제영화제 ‘어머니, 그 향기를 이야기하다’가 11일~19일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전시 ‘모성-한국미술 속의 어머니’, ‘모성-아시아미술 속의 어머니’와 함께 기획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모성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12편이 상영됐다.

영화제는 세계 영상예술 속에 나타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전 인류가 공유하고 지향하는 모성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고자 마련됐다.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5월은 개교기념일이 있는 달인 동시에 가정의 달이기 때문에 가정의 주체가 되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정했다”며 “전시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중심이지만 영화제에서는 모성뿐 아니라 자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등도 포함해 주제를 넓혔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라의 모성을 담은 미디어아트

16일을 제외한 모든 상영일에 상영된 ‘3개국 작가들의 미디어아트’는 강한 모성, 자식에게 집착하는 모성, 모성을 그리워하는 자식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중국 작가 준 양의 <노르웨이의 숲>, 일본 작가 마코 이데미츠의 <히데오, 엄마란다>, 러시아 작가 안나 아르테미에와의 <옛날 옛적에 엄마가 살았습니다>가 차례로 상영됐다. 학예연구원은 “미디어아트는 평소에 관람객들이 접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영화제를 진행하는 동안 자주 상영했다”고 말했다. 미디어아트란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이다.

<히데오, 엄마란다>는 80년대 초 대대적으로 인기가 높아졌던 비디오에 가정주부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문제를 결부시켰다. 작가는 일본의 수많은 가정주부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비디오를 아이의 대용물로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어나. 그러다 학교 늦겠다.” “엄마는 널 위해 살아. 너 때문에 음식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었어.” “아빠는 혼자서도 괜찮을 거야. 네가 외국에 가야 한다면 엄마도 같이 갈게.”

엄마는 아들 히데오가 기숙사에 가고 없자 그동안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녹화한 비디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밥 먹을 땐 밥 먹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며, 낮에는 스트레칭하는 모습의 아들을 보며 가상으로 아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밥, 간식 등을 챙겨준다. 엄마는 비디오를 보다 기숙사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해 “다 컸다고 하지 마. 나에게 넌 여전히 꼬마야.”, “엄마와 모든 걸 함께 결정하곤 했었잖아!”와 같은 말을 남긴다.

△동화부터 호러까지, 다양한 모성을 보여준 애니메이션

14일에는 애니메이션 2편이, 19일에는 1편이 상영됐다. 동화처럼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린 <엄마 까투리>부터 모성이라는 주제를 호러로 표현한 <슈프로슬링>까지 모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속해있지만 다양한 의미의 모성을 다뤘다.

권정생의 소설 「엄마 까투리」를 영화화한 <엄마 까투리>는 조건 없는 엄마의 사랑과 그것을 통한 새로운 희망을 그려냈다.

엄마 까투리와 함께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꺼병이 9형제가 살고 있던 산이 어느 날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다. 당황한 엄마 까투리는 꺼병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도망갈 곳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자 결국 죽음을 통한 희생을 택한다.

“엄마랑 우리 아기들이 함께 있는데 뭐가 무섭니. 자 우리 아기들 이제 정말로 자야지. 푹자고, 내일 또 재미있게 놀자. 자장자장 우리 아기. 어서 자거라.”

엄마는 아홉 꺼병이를 덮은 채 죽어 재가 돼버린다. 꺼병이들은 어머니 덕에 살아남는다.

14일에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키우려는 모성에 일침을 가하는 클레이 에니메이션 <슈프로슬링>도 상영됐다. 영화는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씨앗과 영양분을 주문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밖에도 19일에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여성에게 족쇄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흑백 애니메이션 <외출>이 상영됐다.

△모성, 결혼 등을 둘러싼 갈등을 날카롭게 보여준 다큐멘터리

이번 영화제에서는 6개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영화제의 다큐멘터리는 감독 미리 우르만(Miri Urman) 과 아밋 밀러(Amit Miller) 부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출산기>부터 짐바브웨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끔찍한 폭력을 감미로운 노래와 결합해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연출한 <카레카레즈바코: 옛날 옛적에>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다양한 표현방식이 있었지만, 이들은 공통으로 모성을 둘러싼 갈등을 날카롭게 보여줬다.

16일 상영된 <카레카레즈바코: 옛날 옛적에>의 치치 단가렘바(Tsitsi Dangarembga) 감독은 짐바브웨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가부장의 잔인함과 폭력 그리고 이보다 강한 모성과 여성의 힘을 보여준다.

“익을 생각도 안 하네. 어째야겠니 얘들아. 아빠 좀 도와주렴. 얘들아.”

“엄마, 익어주세요.”

가뭄으로 고통받는 짐바브웨의 작은 마을. 아버지는 아이들을 먹이려고 잡아온 개미를 탐한 자신을 질책한 아내를 죽이고 몸을 잘라 솥에 넣는다. 하지만 살이 익지 않자 아이들더러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 익기를 부탁하라고 시킨다. 아내를 다 먹자 남편은 ‘펑’하고 사라지고 개미 정령의 도움으로 아내가 되살아나 춤을 춘다.

같은 날 상영된 <34살 노처녀>는 딸의 결혼을 걱정하는 엄마와 결혼을 운명이 아닌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딸 사이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결합해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유쾌한 코미디다. “도시 자체가 성인의 이름을 땄기 때문에 독신이 많이 산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지 말라는 엄마는 딸에게 동네 커피숍보다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스타벅스, 대형서점의 자동차 잡지 판매대 등에 갈 것을 권한다. 그러나 딸의 하루를 체험해본 엄마는 괜찮은 남자를 찾을 수 없자 “남자 찾는 거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라”며 딸의 결혼 종용을 포기한다.

이 밖에도 여성의 가임기와 나이를 둘러싼 문제들과 싱글맘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보여준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를 비롯해 <아이들>, <엄마의 코트>가 상영됐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나라, 개념의 모성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영화제를 높이 평가했다. <카레카레즈바코: 옛날 옛적에>를 관람한 졸업생 이미란씨는 “처음 접한 형식의 영화여서 새로웠다”고 말했다. 3개국 작가들의 미디어아트를 관람한 류정미(간호‧12)씨는 “우리나라의 일반적 모성과는 다른 모습의 모성을 볼 수 있어서 감명깊었다”며 “여러 날 동안 다양한 시간으로 영화 시간표가 구성돼 공강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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