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을 모르는 예술가들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 나선다. 허허벌판 위에 공간을 개척하고 그 곳에 상업 자본이 침투하면 근방의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점이 예술가들의 특성이다. 한국 인디문화의 메카인 홍대 앞에도 프렌차이즈 매장이 침투했고 임대료가 상승했다. 이에 주류로 변질된 미국 브로드웨이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오프브로드웨이(Off Broadway)’처럼 예술가들은 홍대를 넘어 상수역 부근으로 새롭게 이전하고 있다. 2000년 12월, 2기 지하철인 6호선 상수역이 개통되고, 2009년 이리카페의 이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상수역 부근이 홍대 상권의 새로운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나의 참모습을 찾다

상수동은 홍대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이리카페’와 ‘카페콤마(Comma)' 같은 북카페 등의 등장으로 책에 의한, 책을 위한 공간으로 구색을 갖추어 가고 있다. 
  
이리카페에서 방문객들은 문학과 소통 할 수 있다. 이리카페는 예술가들이 보통 사람들과 만나는 매개의 공간으로 자주 쓰이면서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작가 김애란, 신경숙 등이 이곳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고 시인 김경주 등은 낭독회를 열었으며 판소리나 재즈 등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고객과 예술가들은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예술을 매개로 자유롭게 소통한다.

시인 김상우와 화가 이준용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많은 작가들을 위해 이리카페를 열었다. 초창기 이리 카페는 인디 음악가들과 연극배우, 문인 등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아지트 구실을 했다. 당시는 ‘북카페’가 생겨나기 전이자 카페에서 낭독회를 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을 때였다. 이리카페 내에서 단골 예술가들은 즉흥시나 인디밴드의 노래 가사를 낭독하고 노래 공연과 마임 같은 퍼포먼스를 결합하는 등 자유롭고 실험적인 행위 예술로 상수역 부근에 새로운 문화 바람을 일으켰다.

이리카페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예술 활동만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문객이 직접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리카페에서는 매달 카페명과 동일한 잡지<이리>를 발행한다. <이리>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뿐 아니라 독립 예술 세계를 지향하는 이리카페의 방문자 누구나 자신의 글이나 만화, 그림을 실을 수 있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예술 서적과 잡지뿐만 아니라 장르 구분 없이 조선풍속도, 현대미술을 소개한 아트북 등 방대한 양의 책들이 있다.

약 10년 간 이리카페에서 낭독회를 여는 김경주 시인은 “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소리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가들이 대형서점 같은 데서 사인회를 하기 보다는 적더라도 독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자신의 목소리로 글의 리듬감을 전하는 게 문학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책을 하나의 놀이로 소개하자는 의도에 걸맞게 카페콤마(Comma) 내 책들은 대개 단행본이다. 책장에 있는 소설, 만화책,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은 카페 내에서는 누구나 꺼내 볼 수 있다. 책이 스며진 공간 안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접하고 즐기고자 하는 카페 주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다른 북카페와 차별점은 카페콤마는 잡지책이 없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카페콤마 장으뜸 대표는 “책은 완전체로써 한 권의 개념인데, 그런 책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고자 부분 부분씩 읽어도 되는 잡지는 되도록 지양한다”고 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책을 매개로 하여 독자들과 실질적 교류를 시행하기 위해 카페콤마를 설립했다. 장 대표는 “출판사로서 독자들을 직접 만나는 공간이 필요했다”면서 “책이 인터넷 상거래로 이용 가능한 기호품이 되어 가는 시대인 만큼 거리를 지나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페콤마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저자와의 만남’ 과 같은 책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린다. 작가 성석제, 백영옥 등이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장 대표는 “저자와의 만남은 주로 책 홍보를 하는데, 이런 행사 보다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독자행사를 기획하고자 한다”며 “독자가 작가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기보다 서로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고 언급했다.


△그 거리, 그 무대가 나를 반긴다

홍익대와 상수역 사이에 위치한 주차장 부근에는 저녁이 되면 기타와 건반, 젬베(아프리카 전통 북) 등 여러 악기를 짊어진 사람들이 길바닥을 무대로 공연하기 시작한다. 장재인, 버스커버스커, 10cm 등 길거리 공연에서부터 시작한 가수들이 최근 음악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인디 음악인을 비롯한 아마추어 뮤지션들 사이에서 길거리 공연(Busking)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길거리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정해진 바 없기 때문에 상수역 문화 거리를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음악이라는 매개로 붙잡는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인디 밴드들을 위해 C Cloud, 카페 이누(Inu)와 같은 상수동 문화거리 내의 복합문화공간에서 다양한 무대를 열고있다.

상수동 내 많은 인디 창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공연을 하는 공간인 C Cloud는 독립창작가에게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C Cloud는 많은 아티스트 소비자와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창작시스템(Creation System)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일종의 ‘예술 편의점’을 지향하며 문화 생태계를 꾸며 나가고자 매주 무료로 정기 공연을 열고 있다. 이 같은 설립 취지에 맞게 C Cloud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은 다른 카페와 달리 아티스트와 관객 간의 소통이 중심이 될 수 있게끔 무대와 관객석만 군더더기 없이 배치되어 있다.

C Cloud의 이병한 대표는 “인디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많이 접해보는 것이 제일 좋다”며 “인디 음악에서는 다듬어 지지 않은 원석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좋은 관객이 좋은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하기에 학생들이 다양한 인디 음악을 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오픈마이크’ 행사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들이 관객들 앞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C Cloud만의 특별한 점이다. 매체에 노출되지 않은 다양한 언더 뮤지션들이 많이 참여하여 공연을 펼치기도 하며 음악이 아니라도 연극, 짧은 단편 영화, 시낭송 등 장르에 관계없이 무대를 꾸미고 있다. 오는 18일(금)에는 김목인의 봄 콘서트 ‘노래의 뒷면’이 열리며 그 외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주기적으로 공연할 예정이다.

카페 이누(Inu)에서도 상수동 근처의 인디 밴드를 발굴, 공연하기 위한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도시적인 건물 사이에서 카페 이누(Inu)는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 같은 외관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페 이누의 내부는 많은 종류의 문화 행사들을 다양하게 개최하는 카페의 특성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테라스와 무대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상수동 근방의 인디밴드들을 위한 무대도 한 쪽에 마련돼 있다. 카페 이누는 공연, 전시 및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때까지 이루리 프로젝트, 장미여관 등의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을 해왔다.

한편 동물 보호 및 복지 활동을 하는 박창진 대표의 제안으로 카페 이누는 다른 카페와 달리 기본적인 사회규범을 지키도록 교육받은 경우에는 반려 동물의 출입이 가능하다. 오는 16일(수)에는 정기공연인 까르미나 이누, 19일(토)에는 의학 세미나인 치중진담, 25일(금)에는 BBQ 파티가 열릴 예정이며 매달 첫째, 셋째 수요일에 정기공연이 항시 있다.

△Someday Festa, 5월의 어느 날

26일(토)~28일(월) 상수역 부근 카페 거리에서는 여러 복합문화공간들과 지역 주민들이 주최하는 ‘Someday Festa, 5월의 어느 날’이 열릴 예정이다. 이 축제는 아트콘텐츠그룹 엠큐피엠 시스템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그문화 카페, 그문화 갤러리’의 김남균 대표가 총괄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매년 특별한 달을 정해 놓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축제를 주최해왔다.

특히 이번 ‘5월의 어느 날’의 목표는 행사를 통해 세대별, 문화적 레이어를 합쳐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문화 거리가 조성되기 전 당인동, 상수동 지역은 거주 지역이었다. 때문에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고 있어 계층 문화가 분리된 상태다. 이 같은 문화적 분리 현상을 통합하는 것이 김 대표가 추구하는 축제다. 더불어 김 대표는 가장 작은 행정 구역인 ‘동’ 안에서 조용히 창작하는 아티스트와 주민 그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 관객 간의 화합에서 이뤄지는 소소하고 차분한 축제를 지향한다.

‘5월의 어느 날’ 축제 행사로 거리에 위치한 카페와 식당에서는 다양한 시연과 강좌도 마련된다. ‘추억이 되는 동네’에서는 지역 동호인들이 시화전, 사생대회, 사진촬영 등을 열고 ‘알뜰살뜰 모아 나눠보세’라는 타이틀을 건 벼룩시장도 열린다. 이번 축제가 열리는 동안 당인동 거리에는 서울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미장원과 참기름 방앗간 등이 있어 관심을 끈다. ‘공간 주인장과의 대화’라는 코너로 진행되는데 방앗간 사장님이 직접 참기름에 대해 강의를 하는 참기름 강좌로 준비되어 있다.

김 대표는 “당인동 지역에 문화거리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데 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공간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홍대 메인 지역과 다른 분위기와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며 “축제 ‘5월의 어느 날’은 각 공간이 갖고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유롭게 구성했고 기존의 생활공간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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